정보 포착하고도 선거 끝나고 LH 압수수색... 골든타임 놓친뒤 경찰 '뒷북수사'

심민관 기자
입력 2021.04.08 14:08 수정 2021.04.08 15:54
신속 수사 강조한 경찰청장 방침과 배치
靑 출신 국수본부장에 대한 우려 현실화
국회의원 소환조사 ‘0건’

서울경찰청이 8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납품비리 의혹과 관련해 경남 진주 LH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진지 한 달이 지났지만, 서울경찰청이 직접 LH 본사를 압수수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재보궐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수사에 속도를 내지 못했던 경찰이 선거가 끝나고 나서야 본격적인 강제수사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9일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경찰이 압수품을 가지고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김동환 기자⋅조선일보DB
지난달 9일 경남 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경찰이 압수품을 가지고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김동환 기자⋅조선일보DB
◇ 신속한 수사 강조한 경찰… 선거 앞두고 ‘표리부동’?

이번 LH 납품비리 사건과 관련해 현재까지 경찰이 입건한 피의자는 총 3명으로, LH 전직 간부 1명과 납품업체 대표 2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던 중 특정 업체에 LH 건설자재 납품에 특혜를 준 의혹을 지난달 포착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이 관련 의혹을 포착한 데 이어 피의자까지 입건한 상황에서 압수수색을 좀 더 서둘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는 그동안 김창룡 경찰청장이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 등과 관련해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철저하고 신속히 수사하겠다"고 발표한 방침과도 배치된다.

특히 지난 한달간 LH 사건 수사와 관련해 침묵을 지켰던 서울경찰청이 선거가 끝난 바로 다음날 압수수색에 들어가자 타이밍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선거라는 방지턱에 걸려 경찰의 수사 진행 속도가 늦춰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선거에 영향이 갈 수 있어 경찰이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선거 다음날로 압수수색 일정을 늦췄을 가능성이 있다"며 "전국민이 지켜보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선거를 이유로 늑장 수사를 한 것을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LH 사건을 선거 이전에 신속하게 수사를 해 종결짓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는데, 시간을 끌면 이슈가 수면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패착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압수수색 영장이 6일 떨어졌고, 나름 속도를 내 곧바로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靑 출신 수장이 수사 지휘… 당연한 결과라는 지적도

이번 LH 의혹에 대한 수사 지휘를 총괄한 인물은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다. 남 본부장은 지난 2018년 8월부터 1년간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에서 파견 근무를 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 남 본부장이 초대 국수본부장 취임 당시에도 청와대 출신의 경찰 내부인사가 수사를 총괄하는 국수본부장을 맡았다면서 수사권 독립을 추진한 경찰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특히 정부와 여당과 관련한 고위공직자들의 혐의 여부까지 제대로 파헤칠 수 있을 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오후 충남 아산시 경찰대학에서 열린 신임 경찰 경위·경감 임용식에 참석해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의 경례를 받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2일 오후 충남 아산시 경찰대학에서 열린 신임 경찰 경위·경감 임용식에 참석해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의 경례를 받고 있다./연합뉴스
이러한 의구심은 남 본부장 취임 후 첫 시험대가 된 LH 수사에서 현실이 됐다. 사건 수사 초기에는 늑장 압수수색 등으로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비판이 이어졌고, 선거를 앞두고는 정치인이나 현 정부 고위직 인사에 대한 수사 속도가 늦춰진 것 아니냐는 의심들도 불거졌다.

남 국수본부장이 수장인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지난달 26일 2017년 퇴직한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행복청장⋅차관급)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것이 고위공직자에 대한 첫번째 강제수사였다. 사건 의혹이 불거진 지 23일 만이었다. 당시 현직도 아닌 은퇴한 전직 고위공직자에 대한 압수수색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국민 여론이 따가워지자, 의혹이 불거진 국민의힘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수사를 뒤늦게 착수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마저도 고발장 또는 진정서가 접수돼 이뤄진 것이었다. 지난 3일까지 고발·진정인 조사는 마쳤지만 아직까지 국회의원에 대한 소환조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특수본에 따르면 경찰은 현재 부동산 투기 사건 152건과 이와 관련된 639명을 수사 중이다. 639명 가운데 국회의원은 5명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