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여고생의 이메일과 자사고 판결의 교훈

오유신 기자
입력 2021.02.22 11:06 수정 2021.02.22 11:30
지난해 8월 서울의 한 특목고 3학년 여학생이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교육부의 임기응변식 정책으로는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특목고 폐지를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교육부의 오류라고 생각한 것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비정상적인 사교육 시장을 인정하면서도 치열한 대입 경쟁 속에서 특목고라는 이유만으로 왜곡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속상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로부터 6개월 만인 지난 18일 서울 배제고와 세화고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위를 유지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소송 비용은 모두 서울시교육청이 부담하도록 했다. 해당 학교장들은 판결 직후 법정을 나서며 "이제 본연의 교육활동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며 환호했다.

서울 소재 자사고들에 대한 판결은 이날이 처음이었지만, 앞서 지난해 12월 부산 해운대고 역시 같은 취지의 판결을 끌어냈다. 이로써 소송 중인 중앙고, 이대부고, 신일고, 숭문고, 경희고, 한대부고 등 6개 자사고도 승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법원이 자사고의 손을 들어 준 근거는 간단명료했다. 자사고 평가를 위한 제도와 기준이 있는데 이를 중간에 바꾸면서까지 지정취소하면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법률 불소급의 원칙과 같은 의미다.

자사고는 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받는다. 이에 따라 이들 자사고는 지난 2019년 상반기에 2015∼2019학년도 평가계획안에 따른 운영성과 보고서를 교육청에 제출했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평가 시작 4개월 전에 새로운 평가 기준들을 학교에 알렸고, 이마저 소급 적용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이번 판결에 대해 "지정취소 절차의 문제였다"며 "2025년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고교체계 개편에 대한 위법 판단은 아니었다"고 평가절하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퇴행적 판결"이라며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지금 교육청이 할 일은 항소가 아니라, 교육현장에 혼란을 초래한 것에 대해 사죄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인터넷에는 판사가 특목고 출신이거나 그 자녀나 손자들이 특목고에 재학 중인지도 모른다는 글도 올라와 있다.

자사고 논란은 늦어도 내년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자사고 등 24개교는 ‘사립학교의 운영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다.

시장의 공정한 질서는 공급과 수요의 관계에서 나온다. 어느 날 갑자기 라면회사가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들은 순순히 가격 인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격 저항이 시작되고 불매 운동으로 이어진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부모와 학생은 교육의 수요자들이다. 교육부는 공급자로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와 법적 절차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스스로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교육의 공급과 수요에서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이유다.

좋은 교육정책은 일사천리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을 차근차근 모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설사 그 시간이 지루하고 도저히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겠다는 두려움이 생기더라도 인내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정부와 교육부가 우리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해야 하는 최소한의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