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 59㎡ 청약도 현금부자 잔치되나... 주거사다리 끊어진 서울 청약시장

연지연 기자
입력 2021.01.13 11:00
"이젠 서울 아파트에 청약이 돼도 문제다."

땅값과 집값이 모두 크게 오르면서 분양가 상한제와 9억원 초과 대출 금지 규제가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사다리를 끊어놓은 결과를 낳고 있다. 서울 서초구 원베일리의 분양가를 본 무주택자들은 올해 줄이어 분양할 둔촌주공이나 방배 6구역의 청약에서 당첨이돼도 자금 마련이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꼽히는 사업지인 둔촌주공아파트./조선DB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으로 꼽히는 사업지인 둔촌주공아파트./조선DB
1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무주택자가 합리적인 가격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도록 고안된 청약제도가 현금부자만 참여할 수 있는 시장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출도 안 되고 잔금을 치를 때 대출 효과를 가져오는 전세 임차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 서초구 원베일리 전용면적 59㎡의 당첨자라면 약 14억원의 자금을 자력으로 융통해야 한다. 14억원은 3.3㎡당 분양가 5669만원을 적용해 산정한 금액이다. 우선 당첨자는 당첨 즉시 분양가의 계약금 20%인 2억8000만원을 자기 자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중도금 대출이 안 되기 때문에 분양 대금의 10%씩 6회에 걸쳐 납부하는 중도금(8억4000만원)도 자기 자금으로 해결해야 한다.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가 9억원 초과 아파트는 원칙적으로 중도금 대출이 금지돼 청약 당첨자가 분양가 전액을 스스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잔금을 치를 때도 주택담보대출은 불가능할 수 있다. 분양가가 14억원인 경우 준공 승인이 날 때 감정가는 15억원을 초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19년 나온 12·16 대책에 따라 KB시세나 분양단지의 감정가가 15억원을 초과하면 주택담보대출이 불가능하다. 결국 나머지 잔금인 2억8000만원도 자력으로 융통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 아파트를 전세주는 것도 불가능하다. 올해 2월 이후 입주자 공고를 내는 분양가 상한제 시행 단지인 경우 2~3년의 의무 거주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최초 입주가능일부터 산정되는 의무거주기간 동안 분양받은 아파트에 거주하지 않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 조사 등을 방해·기피한 자에게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새 아파트를 전세를 주는 방식으로 대출 효과를 보는 길도 막힌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베일리의 분양가를 본 예비 청약자들의 마음은 심란하다. 올해 서울에서 분양되는 둔촌주공(올림픽파크 에비뉴포레), 신반포15차(래미안 원펜타스), 방배6구역(아크로 파크 브릿지) 등 강남권 분양 대어 청약을 위해 기다린 경우 자금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원베일리처럼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제시한 분양가보다 높은 수준으로 분양가가 산정되면 자금 조달에 차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부동산 시장에서는 둔촌주공의 분양가가 평당 3600만원 수준으로 책정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민간단지의 경우 택지비와 건축비, 가산비를 더해 계산되는데, 올해 강동구의 공시지가 상승률(9.85%)을 감안하면 택지비만 약 3200만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건축비와 가산비를 더하면 3.3㎡당 분양가가 3600만~4000만원 수준으로 책정될 수 있다는 것이 분양업계 중론이다. 이렇게 되면 전용면적 59㎡의 분양대금은 9억원이 넘을 수 있다. 래미안 원베일리처럼 중도금 대출이 안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준공 당시 감정가가 15억원을 넘을 경우 잔금 대출도 불가능하다.

국토부 제공
국토부 제공
부동산 전문가들은 분양가 상한제가 무주택자들의 마지막 사다리마저 끊어 놓은 셈이라고 우려한다. 대출규제 이후 자금이 부족한 수분양자들은 새 집을 임대주택으로 돌리면서 얻는 전세금으로 일단 분양대금을 내고, 자금이 다 모이면 그 때 새 집으로 입주하는 전략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분양업계 한 관계자는 "중도금 2회 납부 이후 연체 이율을 내다가 잔금 때 전세를 내주는 고육지책으로 내 집 마련을 해왔던 이들의 마지막 사다리까지 끊긴 셈"이라고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은 도와주는 방식으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무주택자가 내 집 마련을 할 때 중도금 대출은 허용하는 등의 규제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준석 동국대학 겸임교수는 "이제는 서울에서는 9억원을 넘기지 않는 아파트 단지를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면서 "돈 없는 사람은 청약으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다는 뜻인데 취지에도 안 맞는 만큼 손질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대 의견도 있다. 분양가 상한제 효과가 좀 덜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큰 시세차익을 보는 만큼 충분한 의무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분양가가 비싸진 만큼 과도한 의무라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시세 차익이 당첨자에게만 돌아가는 전체 구조를 보면 준공 후 전세를 내주는 방식으로 자금력이 없는 사람이 분양을 받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다"면서 "분양가 상한제, 대출 규제 정비는 필요하지만 로또 분양에 대한 거주 의무 등은 강화하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