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경영권 분쟁…‘승자독식’ 시대는 갔다

김소희 기자
입력 2021.01.12 16:26 수정 2021.01.12 18:19
최근 한 투자업계 관계자를 만났다. 수년 전 자신이 투자했던 회사와 이사 선임안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던 인사였다. 당시 주주총회에서는 패배했지만 선뜻 물러나지 않아보일 만큼 회사에 반감이 많아 보이던 그였다. 하지만 3년 만에 그가 전한 소식은 더이상 회사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재는 회사가 추진 중인 신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도 했다. 느닷없는 화해라니, 뜻밖이었다.

그간 상장사에서 경영권 분쟁이 일거나 주요 안건을 두고 두 진영이 맞붙었을 때 패배한 쪽은 회사의 경영에서 손을 떼 거나 보유 지분을 정리하는 일이 많았다. 스웨덴 혼성 그룹 아바(ABBA)의 노래 ‘The Winner Takes It All’처럼 승자는 모든 것을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변화의 기류가 감지된다. 싸움에 졌더라도 회사와 손을 잡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한진칼과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강성부 KCGI 대표를 두고 업계 관계자들은 강 대표의 지분 매각을 점쳤었다. 대한항공 임시 주주총회에서 KCGI가 반대했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유상증자안이 통과되면서 이러한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주주총회 다음날 만난 강 대표는 결과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그는 우주항공기업 스페이스X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를 예로 들면서 대한항공의 신사업 발전 방향을 고민한다고 했다. 그는 "지분 매각 계획은 당분간 없다"고 선을 그었다.

패자가 지분을 유지하면 승자독식론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산업은행은 현재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우호 지분으로 분류되지만, 추후 조 회장에게 경영 압박을 넣을 수도 있다. 이 경우 KCGI와의 연합도 고려 가능하다. 조 회장이 경영권 분쟁에서 이겼다고 축배를 들기 어려운 이유다.

승자 입장에서는 ‘어제의 적군’의 도움도 필요하다. 실제 한진칼은 그간 KCGI의 요구안을 따르면서 기업 가치를 높여오기도 했다. 부채비율을 1500%까지 끌어올리면서 주주가치를 훼손하던 대한항공이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적절한 견제가 필수적이다.

표 싸움에서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던 시대는 끝났다. 경영권을 차지했다고 독단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도 옛말이다. 오히려 승자와 패자가 주주라는 이름 아래 기업 가치 상승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지니고 있으니 협력할 것도 많다. KCGI와 강 대표가 한진칼에 협력하고자 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주요 주주들이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먼저 생각할 때 그 기업은 더욱 성장 가능하다. 겸손한 승자와 담대한 패자가 만나는 일이 많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