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시장 독점과 불공정 거래

김종호 부국장 겸 산업부장
입력 2020.11.21 06:00
오는 12월 1일은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한 지 22년이 되는 날이다. 1998년 당시 전문가들은 독점 문제를 지적하며 인수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두 회사를 합치면 시장점유율이 50% 이상으로 높아져 경쟁이 제한된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자동차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 등을 거론하며 인수를 승인했다.

현대차는 정식 인수 계약을 체결하기도 전에 독점 파워를 휘둘렀다. 채권단에 기아차의 부채를 추가로 탕감해 달라고 요구해 2194억원을 깎았다. 낙찰 당시 탕감받은 금액까지 합치면 현대차는 총 7조3894억원의 부채를 탕감받은 것인데, 이는 기아차 총부채의 81%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인수 계약을 체결한 후 현대·기아차는 가격을 인상했다. 1999년 트라제XG와 카렌스를 출시하면서 당초 책정한 가격보다 200만~300만원 높게 판매했다. 이를 시작으로 쏘나타 그랜저 등 인기 차종은 물론 경차와 버스까지 해마다 가격을 큰 폭으로 인상했다. 소비자들은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됐다.

협력업체의 부품 납품단가는 매년 큰 폭으로 후려쳤다. 그 결과 현대·기아차는 세계 5대 자동차 회사로 성장했지만 부품업체들은 크지 못했다. 2018년 기준으로 세계 100대 자동차 부품회사 중 한국 업체는 6곳에 불과하고, 그 중 현대차 계열사를 빼면 2곳 뿐이다.

일감 몰아주기 문제도 발생했다. 현대글로비스, 현대오토에버, 이노션 등 총수 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회사들은 현대·기아차가 몰아준 물류, IT, 광고 물량을 받아 빠르게 성장했다. 총수 일가는 배당을 통해 큰 수익을 얻었다.

정부가 자동차 시장 1, 2위 기업의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바람에 나중에 부도가 난 기업의 구조조정은 어려움을 겪었다. 대우·쌍용·삼성차는 뿔뿔이 해외 매각되어 하청 기지로 변하면서 신규 투자는 줄고 미래 비전은 불투명해졌다.

일각에선 현대·기아차의 인수합병으로 국내에선 독점적 폐해가 있었지만 해외에선 세계 5위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세계 5위가 되기까지 임직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자동차 강국인 독일과 일본이 세계시장을 선도하면서도 국내에서 독점의 폐해를 겪지 않는 까닭은 국내 시장에서 여러 자동차 업체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산업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자동차 회사들이 대등하게 경쟁하는 상황이라면 신차 가격의 급격한 인상이나 과도한 납품단가 삭감은 어려웠을 것이다. 현대·기아차가 볼보나 재규어 같은 자동차 회사를 인수하지 않고 삼성동 땅을 10조원에 매입하는 무모한 경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에도 산업계에서는 독과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국내 굴삭기 사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입찰에 참여했다. 현대중공업 계열 현대건설기계는 굴삭기 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하면 점유율 60%의 독점 기업이 된다.

인수가 이뤄지면 굴삭기 가격을 빠르게 올리고 부품 납품단가를 심하게 깎을 가능성이 크다. 굴삭기 부품 업체들은 지금도 해마다 납품단가 인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데, 두 회사가 합쳐지면 더 심해질 것이라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도 독점 논란이 일고 있다. 인수가 이뤄지면 국내선의 66%를 차지하게 된다. 국제선도 인수합병으로 해외 도시별 국가별 직항편 좌석의 100%를 점유하는 노선 수가 늘어난다. 결국 국내선과 국제선 일부 노선에서 가격 인상이 예상된다. 두 회사의 치열한 경쟁 속에 향상된 서비스 품질은 경쟁이 사라지면서 하락할 수 있다.

특혜 시비도 일고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KCGI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국책은행이 국민 세금으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조 회장의 경영권을 강화해주는 특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로 아시아나항공의 가치가 바닥인 지금이 매각에 최적기인가, 1위 기업에 2위 기업을 매각하는 것이 항공산업 발전에 최선인가 하는 의문도 제기된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공정위 검토에 이어 법적 분쟁까지 예고돼 있어 최종 성사 여부는 현재로선 알 수 없다.

독점이 문제가 되는 것은 기업 간 경쟁이 약화해 산업 발전과 경제 성장, 소비자 이익을 해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점의 폐해를 지난 22년간 자동차 시장에서 겪어왔다. 이제부터라도 산업 보호와 소비자 편익을 위해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정부가 독점을 허용하고 조성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