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TALK] '영상 15℃서 전력 무손실’ 초전도체… 만든 사람도 “구조 몰라”

김윤수 기자
입력 2020.10.17 06:00
네이처 "美, 세계 최초 상온에서 구현"
극저온에서만 가능했던 ‘그림의 떡’
상용화 향한 학계의 100년 노력 결실?
초고압 제작 탓 화학식 등 구조 파악 안돼
무손실 송전·양자컴 등 활용 무궁무진

극저온 환경에서 구현되는 기존의 초전도 현상. 물질이 초전도체가 되면 전기저항이 0이 돼 내부에서 전기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다. 외부 자기장을 밀어내는 ‘마이스너 효과’도 발생해 물질이 공중에 뜨게 된다./네이처
극저온 환경에서 구현되는 기존의 초전도 현상. 물질이 초전도체가 되면 전기저항이 0이 돼 내부에서 전기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다. 외부 자기장을 밀어내는 ‘마이스너 효과’도 발생해 물질이 공중에 뜨게 된다./네이처
섭씨 영하 수십도 환경에서만 발견됐던 초전도 현상이 영상 15도의 상온에서 최초로 구현됐다. 전기 전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을 없애주는 초전도체가 상용화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네이처는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진이 이같은 성과를 이뤘다고 지난 14일(현지시각) 전했다. 다만 연구진도 이 초전도체의 내부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추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서 매년 1조 6755억원어치 전력손실 발생… 초전도체로 해결?

전기가 흐른다는 것은 물질 속에서 전자가 움직인다는 뜻이다. 원자들의 결합, 진동 등으로 인해 전자의 움직임이 방해받는 정도를 ‘저항’이라고 한다. 저항은 전기 에너지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다. 전구, 모터, 온열기 등은 전기 에너지의 손실을 야기하고 그중 일부를 빛, 동력, 고열로 바꾸는 저항체들이다.

하지만 전자가 도선을 지나며 잃는 전기 에너지는 대부분 쓸모없는 열로 버려진다. 따라서 도선은 저항이 가능한 한 작은 물질로 만드는 게 좋다. 정교한 반도체 집적회로에는 금이, 일상에서는 값싼 구리가 도선으로 주로 쓰이는 이유다. 이론적으로 전력손실(1초당 손실되는 전기 에너지)은 도선의 저항에 비례한다.

한국전력이 도미니카공화국에 설치한 배전 설비./한전 제공
한국전력이 도미니카공화국에 설치한 배전 설비./한전 제공
지난 15일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한국전력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해 송배전을 통해 전국 각지에 전력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전체 생산량의 3.54%가 손실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 비용으로 환산하면 지난 10년간 연평균 1조 6755억원의 손실액이 발생했다. 송전 거리를 좁혀 손실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지만, 물질이 저항을 갖는 이상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저항이 0인 물질인 초전도체가 100여년 전 발견된 이래 꾸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이유다. 1911년 영하 268.8도에서 수은의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현상이 학계에 처음 보고됐다. 우주에서 가장 낮은 온도인 절대 0도(섭씨 영하 273.15도)보다 불과 4~5도 높은 극저온 환경이 필요한 만큼, 이 초전도체를 실제 활용하기는 불가능하다.

초전도 이론을 세워 두 번째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미국 과학자 존 바딘./노벨상 홈페이지
초전도 이론을 세워 두 번째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미국 과학자 존 바딘./노벨상 홈페이지
1957년에는 미국 과학자 존 바딘이 제자 2명과 함께 초전도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을 세웠다. 물질마다 정해진 기준 온도(초전도 전환 온도) 아래로 냉각되면 그 물질 속 원자의 진동이 거의 사라져 전자의 이동을 방해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바딘은 이보다 1년 전 트랜지스터 발명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데 이어 1972년 초전도 연구 공로로 같은 상을 다시 한번 수상했다.

◇황화수소, 영하 70도 ‘고온’에서 작동… ‘초전도체 연금술’의 기준 되다

이후 초전도 전환 온도를 최대한 상온에 가깝게 높이기 위한 연구가 이어져왔다. 과학자들은 압력을 높이고 최적의 물질 조합을 찾아가며 전환 온도를 높여왔다. 2015년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진이 수소와 황(S)으로 이뤄진 황화수소를 150만 기압(대기압의 150만배)의 압력으로 압축하면 섭씨 영하 70도에서도 초전도 현상이 유지된다는 것을 발견해 네이처에 발표했다. 초전도체 분야에서 이 정도의 온도는 나름 ‘고온 초전도체’로 분류된다.

네이처에 따르면 당시 초전도 황화수소 소식을 접한 중국 베이징대 연구진은 황화수소를 이루고 있는 황의 7.5%를 인(P)으로 바꾸고 250만 기압으로 압축하면 영상 7도에서도 초전도체가 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과학자들에게 황화수소가 최적의 초전도체 조합을 찾기 위한 기준이 된 것이다.

2018년 조지워싱턴대 연구진은 200만 기압 환경에서 황 대신 ‘란타넘(La)’이라는 원소를 수소와 결합시켜 ‘수소화란타넘’을 만들었다. 초전도 전환 온도가 영하 13도까지 높아졌다.

◇마침내 상온… 남은 과제는 초고압 조건 완화와 물질 구조 파악

2년 후인 올해 로체스터대 연구진은 황화수소의 황을 란타넘 같은 다른 원소로 교체하는 대신 제3의 원소로 탄소를 추가하는 방식을 택했다. 수소, 황, 탄소 세 원소를 260만 기압으로 압축시킨 결과 섭씨 영상 15도에서도 초전도 현상이 구현됐다. 초전도체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극저온 환경 제약을 해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로체스터대의 초전도체 실험 장비./로체스터대
미국 로체스터대의 초전도체 실험 장비./로체스터대
대신 기압이 높아져 새로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네이처는 "초고압이 아닌 (어느 정도) 고압 환경에서는 이미 초전도체 사용이 가능하다"는 전문가의 말을 전했다. 초고압의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사전적으로 2만 5000기압 이상의 압력으로 정의된다. 연구진의 기압 조건이 100분의 1 정도로 줄어들어야 하는 과제가 남은 것이다.

연구진은 "압력이 높아 이 초전도체의 크기가 작아져 구조 파악이 어렵다"며 "수소, 황, 탄소로 구성됐다는 것 외에 초전도체의 정확한 구조와 화학식은 아직 모른다"고 했다. 이어 "추후 논문으로 출판되면 많은 과학자들이 이를 밝히기 위해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韓 연구진, 초전도체 흐르는 전자 관찰… 자기부상열차·양자컴에도 활용

국내에서도 관련 연구가 있었다. 2016년 기초과학연구원(IBS) 강상관계물질연구단의 이진호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연구팀은 미국 코넬대와 함께 구리 등으로 만들어진 초전도체 내부에서 흐르는 한쌍의 전자(쿠퍼쌍 전자)의 공간 분포를 원자 해상도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이 교수는 "쿠퍼쌍을 직접 측정하는 새로운 실험 기법을 개발해 고온 초전도 현상을 연구하는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것"이라며 "향후 전력 무손실 송전과 자기부상 설비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전도체는 자기공명영상(MRI) 장치, 자기부상열차, 양자컴퓨터의 원자 기반 연산 시스템 등에도 활용될 수 있다. 자석 등으로 발생한 자기장 위에 초전도체를 놓을 경우, 초전도체가 이 자기장을 완전히 밀어내고 공중에 뜨게 되는 ‘마이스너 효과’를 응용하는 것이다. 향후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해야 하는 입자, 에너지 등을 저장·보관·차폐하는 데에도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