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타인의 기대를 떨어뜨리라" 인정 강박에 지친 당신에게

김지수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0.10.17 07:00 수정 2020.10.17 09:17
"인정 강박, 실제보다 기대 무겁게 느껴서 문제"
"기대하지 마세요" 사전 김빼는 ‘자기 불구화 전략’
"성공한 부모의 자녀, 무력감… 인정 투쟁 심각해"
"직장인은 오른 임금만큼만 부담 가지라"
"노력으로 인정욕 못채워…약점 노출해 기대 낮춰야"

20년 간 ‘인정 욕구'를 연구해 온 일본의 조직 경영학자 오타 하지메. 인정 욕구의 빛과 그림자를 담은 책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썼다./©BOOKSCAN
20년 간 ‘인정 욕구'를 연구해 온 일본의 조직 경영학자 오타 하지메. 인정 욕구의 빛과 그림자를 담은 책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썼다./©BOOKSCAN
유명인사를 인터뷰할 때 으레 건네는 인사가 있다. "이번 영화도 기대하겠습니다." "다음 작품도 정말 기대되네요." 이상한 건 그 의례적인 덕담에 당사자들이 과하게 손사래를 친다는 것이다. "절대로 기대하지 말라!"고 간곡하게 당부하는 이도 많았다. 요는 "부담 없이 봐달라"는 것. 안 그래도 ‘흥행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그들에게는 가벼운 말 한마디조차 과적이었던 것이다.

때때로 나조차 "이번 주 인터뷰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마음, 기저에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대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제 기대보다 ‘과도하게 기대를 느끼는 마음의 저울'이다. 인지된 기대는 한없이 크게 느껴지고 그에 비해 효능감은 떨어질 때, 당사자는 심리적 감옥에 갇혀 몸부림친다. 인정 강박이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현대인들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 크고 작은 인정 강박의 감옥을 경험한다. 인정받기 위해 과로하다 번아웃에 빠지며, 인정받기 위해 학업에 매달리고, 인정받으려 애쓰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인정받지 못해 가출하거나 자살하기도 한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삶 자체가 끝없는 인정 투쟁이다.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때로는 이 말처럼 애처롭고 서글프게 느껴지는 말도 없다. 우리는 왜 타인의 기대에 인생을 ‘몰방’하는가. 기대를 받고 기대를 이뤄가는 것은 분명 삶의 건강한 엔진이지만, 기대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조절력이 필요하다.

교토대 경제학 박사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라는 책을 쓴 오타 하지메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인정 강박의 실체를 인지된 기대와 자기 효능감의 격차로 풀어낸 심리 공식을 발표했다.

"인정 강박에 빠지지 않으려면 기대에 ‘적당히’ 부응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며 "너무 커진 기대를 조절해 자기 능력에 맞게 떨어뜨릴 것"을 조언했다. "직장인은 임금이 오른 만큼만 부담감을 가지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덧붙였다. 그렇지 않으면 ‘인정 욕구가 우리의 뒤통수를 치게 될 것'이라고.

20년 동안 그가 인정 욕구를 연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놀랍게도 인간은 자아실현 욕구보다 인정욕구가 더 강하다는 것.

-인정 욕구란 무엇인가요?

"타인에게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입니다. 인정 욕구가 있기에 인간은 노력하고 건전한 성장을 이뤄갑니다."

-주체는 타인이군요!

"그렇습니다. 인정은 타인이 존재해야 해요. 서로에게 의존하는 가운데 충족되는 욕구예요.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돕는 이유도 인정받고 싶어서죠."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는 없으니, 스스로를 위해 그 마음을 조절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오타 하지메.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는 없으니, 스스로를 위해 그 마음을 조절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오타 하지메.
-‘나는 가치 있다’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자존감 강한 사람은, 인정 욕구가 덜한가요?

"자존감과 인정 욕구는 연결돼 있어요. 성공을 거듭해도 스스로 그 가치를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때 주위에서 ‘대단하다!’ ‘전과 비교해서 성장했다' 알려주면 불안이 줄면서 자기 확신이 생기죠. 일본인의 경우, 자기 능력을 스스로를 인정하는데 약한 편입니다. 주위에서 인정해줘야 비로소 자기효능감을 깨닫죠. 인정은 자존감을 도와주는 피드백, 거울입니다."

-왜 우리는 인정 욕구에서 벗어날 수 없을까요?

"공동체의 인정과 평판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죠.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누구나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해요. 특히 일본인과 한국인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의 인정을 각별하게 여겨요. 체면이 깎이고 인정이 훼손되면, 자기 붕괴가 일어나 자살까지도 이어집니다."

-선생은 인정 욕구로부터 자유로운가요?

"저 또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정 욕구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삶의 보람이나 동기부여로 이어가려 합니다. ‘독’이 아니라 ‘약’으로 쓰려는 것이지요."

-인정 욕구는 언제 독이 됩니까?

"배후에 숨어 있는 강박이 커질 때죠. 대학에서 한 대학원생을 지도할 때였어요. 높게 평가하고 기대를 거는 순간, 갑자기 자퇴했어요. 그런 일들은 의외로 많았어요. 한 대기업은 신입사원 시절 마음을 무겁게 한 상사의 말로 "앞으로 더 기대하고 있겠네"를 3위로 뽑았습니다. 사람들은 인정받을수록 거기에 매달리죠."

-하지만 기대하고 기대받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요.

"실제로 기대를 받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그 기대에 얼마나 부담을 느끼느냐입니다. 인지된 기대 즉 스스로 느끼는 부담감이 인정 강박의 실체에요. 일례로 대학 입시에서 낙방한 학생들은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주위 사람에게 ‘실망을 안겼다’는 사실에 더 괴로워해요. 사람들이 기대를 거두자 부담에서 벗어나 비로소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도 하고요."

-실제 기대와 인지된 기대 사이의 부조화가 심각하군요!

"대다수는 실제 기대보다 기대를 더 무겁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대하는 쪽보다 기대를 받는 쪽이 나이가 젊고 인생 경험이 적어서죠. 또 기대하는 쪽은 ‘다른 사람 일’이지만, 기대를 받는 쪽은 ‘바로 나의 일’, 즉 자신의 평가와 자존심이 걸려 있기 떄문이에요."

실제 기대와 인지된 기대 사이의 부조화가 강박을 초래한다.
실제 기대와 인지된 기대 사이의 부조화가 강박을 초래한다.
오타 하지메의 설명에 따르면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자기불구화 전략’을 취한다. 큰 시험을 앞두고 어딘가 아프거나 컨디션이 나빠지는 사람, 경기를 앞두고 ‘부상했으니 이기기 어렵겠다’고 엄살을 떠는 선수가 그 예다.

-‘자기불구화 전략’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표창장을 받고 사직하는 사람, 기대에 눌린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 것도 일종의 ‘자기 불구화 전략'이죠. 주위 사람에게 "기대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겁니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 있기 전날, 일부러 숙취 상태를 만드는 사람도 있어요.

아이가 시험 전날 "TV를 많이 봤다"라거나 "잠만 잤다"고 하는 것도 미리 평가 하락을 막아두는 행위죠. 주위를 낙담 시켜 자신을 보호하려는 겁니다. 심하면 일부러 반항적인 행동을 하거나 무능을 가장해서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된다는 의식은 일본인이 특히 더 강한 것 같은데, 그건 왜 그런가요?

"일본 사회에서는 ‘표면적인 인정’보다 ‘이면의 인정’이 더 중요합니다. 성과를 보이는 것보다 조화를 해치지 않는 것, 실수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죠. 왜냐? 사회나 조직이 모두 ‘제로섬’ 게임을 벌여서죠. 한정된 자원(돈이나 직책 등)을 구성원들끼리 빼앗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무엇을 해야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돼’라는 태도가 나와요. 수동적이죠."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사도 세자는 완벽주의 아버지인 영조에게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다 뒤주 안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영화 ‘사도'의 한 장면. 사도 세자는 완벽주의 아버지인 영조에게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다 뒤주 안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때때로 사회적으로 큰 성취를 이룬 부모의 자식들이 인정 욕구의 희생양이 되더군요. 흙수저 금수저 이분법을 들추면 강한 부모 밑에서 ‘존재감'을 잃어버린 ‘투명수저'들도 많아요. 삶 전체가 인정 투쟁이 되는 거죠.

"부모가 너무 대단하면 아이는 부모와 쉽게 비교당해요. 웬만큼 노력해도 칭찬을 못 받죠. 견디기 힘든 것은 가정에서 존재감이 낮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사춘기 무렵부터 인정을 두고 부모와 갈등을 일으켜요. 평범한 부모와의 힘겨루기도 버거운데, 위대한 부모라면 그 존재감 앞에서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요.

성장기 청소년에게 자신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만큼 불안한 일은 없습니다. 노력해도 인정을 못 받으면 나쁜 짓을 해서라도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하죠. 혼나는 게 무시당하는 것보다 낫거든요.."

-가정이 인정 투쟁의 장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이는 부모의 인정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지해요. 그런데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학력 사회라 성적이 곧 자녀의 정체성이라는 착각에 빠져있는 것 같습니다. 가정이 ‘우수함’을 다투는 장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해요. 성과를 통해 입증되는 존재가 아니라, 커갈수록 자율적인 존재 그 자체로 인정받는 경험을 만들어 주세요."

-기질적으로 인정 욕구의 강박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 있나요?

"책임감이 과도하게 강한 사람입니다. 자기 기준이 높은 사람들이죠. 이런 유형은 타인의 기대가 고스란히 스트레스가 돼서 자신을 궁지로 몰고 갑니다. 모범생들이야말로 인정 욕구 강박의 최대의 희생자예요."

-성실한 사람도 인정 욕구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많더군요.

"성실은 삶의 큰 무기입니다. 그러나 타인의 기대는 통제하지 않으면 괴물처럼 커지고, 성실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오지요. 일의 결과뿐 아니라 ‘성실한 사람’이라는 인격에 대한 인정까지 있어, 이중 감옥에 갇혀버립니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인정 욕구의 감옥에 갇힌다는 게 아이러니입니다.

"인정에 민감할수록 조종되기 쉬워요. 엘리트들은 아이 때부터 기대에 부응했고 인정 경험을 쌓아왔어요. 주어지는 과제에만 대응하고 평가를 받아서 공부도 일도 수동태죠. 그들 사전에 "할 수 없어요" "무리입니다"라는 단어는 없어요. 그 말에 수치심을 느끼죠. 최근 직장이나 학교에서 혼나는 일이 줄어든 것도 문제예요. ‘과대평가’가 지속하면, 자기객관화가 불가능해지죠."

인정 욕구라는 거대한 괴물을 건강하게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책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인정 욕구라는 거대한 괴물을 건강하게 다루는 법을 알려주는 책 ‘인정받고 싶은 마음'.
-왜 자신을 망치면서까지 좋은 평판을 이어가고 싶어 할까요?

"원치 않았다 해도 한번 인정받으면 내려놓기 어렵습니다. ‘넛지'를 쓴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는 이를 보유효과라고 불렀어요. 같은 것이라도 얻을 때의 가치보다 잃을 때의 가치가 더 크게 느껴지죠. 게다가 평판을 잃는 건 공동체에서 거부당하는 느낌을 주지요."

오타 하지메는 좋은 대학을 나오고 대기업에 취직한 엘리트들이 3가지 불행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주위의 기대 자체가 크고, 둘째는 그에 비해 학력과 업무 능력의 상관관계가 줄었으며, 셋째는 그런데도 그들이 자신의 기대치를 낮추지 못하기에 오는 불행이다.

해법은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의 행동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것. 그는 인정 욕구가 주는 부담감의 크기를 측정하는 방법을 하나의 공식으로 제시했다.

(인지된 기대-자기효능감)x상황의 중요성=부담감의 크기

-인정 강박을 수학 공식으로 설명한 부분에 무릎을 쳤습니다. 어떻게 발견했지요?

"인간 관찰입니다. 학생, 직장인, 스포츠 선수와 연예인 등을 주의 깊게 보면서 인정 강박은 이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인지된 기대와 자기효능감의 격차가 크면 부담감이 커져요. 평판에 비해 실력이 모자란 데 도망칠 수도 없다면, 머리가 아득해지겠죠. 반대로 격차가 커도 그 상황이 자신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면 부담감은 적습니다."

그는 나의 기대가 상대를 압박하는 것은 아닌가, 항상 돌아보라고 권고했다.
그는 나의 기대가 상대를 압박하는 것은 아닌가, 항상 돌아보라고 권고했다.
부담감은 결정적인 순간에 큰 변수로 작용한다. 일례로 대형 학원의 케이스 스터디를 보면 입시 커트라인 위에 있는 아이보다 조금 아래 있는 아이들이 합격률이 높다고 한다. 실력은 큰 차이 없어도 위에 있는 아이는 기대를 지키려는 불안이 강한 반면, 아래 있는 아이는 부담 없이 ‘안돼도 그만'이라는 공격적인 태도로 임해서 역전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

-부담을 줄이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대에 적당히 부응하는 연습을 해야죠. 너무 커진 기대를 스스로 조절해 자기 능력에 맞는 기준으로 떨어뜨려야 해요. 첫 번째 열쇠는 인지된 기대 수준을 적정 수준까지 낮추는 것이고 두 번째 열쇠는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거죠. 세 번째 열쇠는 상황의 중요성을 낮추는 거예요. "이것 말고도 소중한 게 많아" "도망쳐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면 부담감이 줄어듭니다."

-사려 깊은 사장이 "이 상은 과거에 대한 포상이니 부담 가질 필요 없다"라거나 노련한 학원 강사가 "이 문제는 까다로워서 풀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같은 말이 강박을 완화해주는 보험 같은 역할을 한다고요.

"요컨대 윗사람은 인정을 잃어 자존감을 다칠 거라는 공포를 제거해주면 좋아요. 스스로 보험을 들 수도 있습니다. 종종 자신의 약점을 노출해서 기대 수준을 낮춰놓으면 실패해도 이해받을 수 있죠. 역설적으로 약점을 보여주면 강한 멘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 개의 스테이지에서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고 사는 것도 강박을 낮추는 효과가 있나요?

"능력을 발휘하는 장소, 평가받는 그룹이 많을수록 평가에 덜 심각해집니다. 한군데서 인정받으려고 올인하지 않죠. 정체성을 분산 시켜 다원화하면 ‘이게 아니면 다음'이라는 대안이 생겨요. 반드시 본업 이외에 부업이나 취미를 갖기를 권합니다. 일본은 남성보다 여성이 인정 욕구 강박에 덜 빠졌는데, 육아, 동호회, 자원봉사 등 여러 개의 스테이지에 자기를 세웠기 때문이었어요."

-스포츠 선수, 영재 등 일찍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인정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첫째, 남들의 반응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설정한 디테일한 평가 기준을 만드세요. 둘째, 더 큰 목표를 세워서 눈앞의 목표를 상대화하는 겁니다. 먼 미래를 생각하며 꿈을 품으면, 당장 기대에 못 미쳐도 하늘이 무너질 만큼의 스트레스는 피해갈 수 있어요. 작년 일본 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시부노 히나코 선수는 팬들의 기대에 압박감을 느꼈지만, 메이저 선수권 대회를 모두 제패하는 그랜드슬램을 목표로 정신력을 다졌다고 해요."

“삶은 인정 욕구에 의해 좌우된다.”
“삶은 인정 욕구에 의해 좌우된다.”
-직장인은 회사에서 임금이 오른 만큼만 부담을 느끼라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사회학자 게오르그 지멜(Georg Simmel)이 ‘화폐의 철학’에서 지적했어요. 돈을 매개로 인간은 인격적 종속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요. 돈은 구체적이고 정량적이에요. 돈을 매개로 하면 여분의 심리적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죠. 그러니 사원을 인정할 때도 칭찬에 해당하는 액수의 돈으로 보상하는 게 좋습니다."

-‘적정한 인정 시스템’을 학교나 기업 등에서 만들 수 있을까요?

"다원화와 오픈화가 관건이에요. 공부하는 목적, 일하는 방식에 선택지를 여러 루트로 만들고 개인이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 핵심은 다양성입니다. 성별, 인종, 취업 형태 등 다양한 사람이 섞여 있어야 능률이 높아져요. 출세, 전문성, 워라밸 등 다양한 자기 목표를 가진 사람으로 팀을 구성하면, 제로섬 부담 없이 서로를 인정할 수 있어요. 이때 리더는 시의적절한 피드백으로 존재감을 확인시켜주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자기효능감이 떨어지죠. 절필하는 작가, 은퇴하는 바이올리니스트… 하강 곡선을 유연하게 만들어갈 방법이 있습니까?

"자신에 대한 평가 기준을 바꿔야죠. 화려한 기술, 겉모습보다 안정감과 포용력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해야죠. 중심축을 틀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소설가라면 다른 장르의 글을 써보거나, 무용수라면 지도자, 스포츠 선수라면 방송인으로 경력을 전환해 보는 거죠."

-부담을 토로하는 ‘잘 나가는 사람'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는 것이 좋은가요?

"생각하는 만큼 타인은 그의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주세요. 좀 못해도 다른 사람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요. 완벽을 도모하기보다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해야 오래 간다는 진리를 일깨워주면 좋습니다."

-한국에서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이 유행했습니다. ‘인정 강박’과 ‘열정 착취’에서 벗어나겠다는 청년들의 선언이지요. 저성장 시대를 먼저 경험한 일본 청년들은 어떻습니까?

"일본 청년도 비슷해요. 최근에는 회사에서 승진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부자 되기'보다는 ‘연봉 200만 엔으로 살기’ 같은 생활방식에 호응도가 높아요. 자동차나 고가의 가전제품, 명품 옷이 없어도 ‘자기답게 살면' 충분하다는 거죠."

-페이스북의 ‘좋아요’에 집착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인 인정 욕구인 것 같습니다. 벗어나기 위한 팁이 있을까요?

"SNS도 일종의 인정 공동체입니다. 당장의 ‘좋아요’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시야를 넓히세요. 인정받으려 하는 ‘범위’와 ‘기간’을 넓히는 겁니다. 변방에 있는 의외의 나라, 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과 연락하면서 공동체의 범위를 넓혀보세요. ‘인류'라는 가족을 경험하는 거죠. 폭넓게 교류하면 인정 욕구의 강박에 빠질 위험성도 낮아집니다."

오타 하지메는 “기대하고 있네"라는 말보다 가정과 일터에서 수시로 “잘했다” “괜찮아" “멋지네" 가벼운 수긍과 인정을 주고받으라고 조언한다.
오타 하지메는 “기대하고 있네"라는 말보다 가정과 일터에서 수시로 “잘했다” “괜찮아" “멋지네" 가벼운 수긍과 인정을 주고받으라고 조언한다.
-문득 궁금하군요. 인정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애초에 인정은 상대의 의지에 달린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인정받고 싶어도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인정 욕구는 채워지지 않지요."

-마지막으로 인정 강박에 진땀 흘리며 사는 한국인을 위해 조언을 부탁합니다.

"일방적으로 인정받는 처지라면 인정 욕구의 강박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인정은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해요. 가정에서는 아이가 부모에게, 학교에서는 학생이 교사에게, 회사에서는 구성원이 리더에게 감사나 인정의 메시지를 전해주세요. 다른 사람에게 피드백을 주면서 인정하는 기회를 늘리면, 자기 가치감이 생겨서 강박을 이길 힘이 생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