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환란 후 최악, 곤두박질친 제조업 경기…3분기 경기회복 '난기류'

세종=정원석 기자, 세종=박성우 기자
입력 2020.06.30 11:55 수정 2020.06.30 12:48
5월 제조업 재고율 128.6%... 21년 9개월 만에 최고치
車 생산 21.4%↓·수출 57.6%↓… 부품 등 공급망 붕괴 ‘우려’
"생산·고용·투자 부진 장기화…확장재정 효과 점검해야"

제조업평균가동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후 최저 수준인 63.6%로 급락한 5월 산업활동동향이 발표된 후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경기 하강이 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수출 급감 충격이 제조업 전반으로 광범위하게 파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동률 하락이 재고 급증에 때문이라는 점을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5월 제조업 출하 대비 재고율은 128.6%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8월(133.2%) 이후 21년 9개월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생산한 제품이 팔리지 않아 기업들이 공장에 쌓인 재고를 소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코로나로 촉발된 생산 부진이 장기화될 조짐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코로나 여파가 일단락되는 3분기부터는 생산·소비·투자 등 경제활동이 정상화 될 것이라는 정부와 한국은행의 경제전망의 기본 전제가 어그러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지난 5월 29일 울산 북구 현대차 울산공장 야적장에 선적을 기다리는 자동차들이 빼곡히 주차돼 있다. /뉴시스
지난 5월 29일 울산 북구 현대차 울산공장 야적장에 선적을 기다리는 자동차들이 빼곡히 주차돼 있다. /뉴시스
◇ 車업계, 판매는 줄고, 재고는 쌓이고, 공장은 멈추고… 공급망 붕괴 ‘우려’

전문가들은 이같은 ‘재고율 급등→가동률 급락’의 악순환이 글로벌 생산망 붕괴에 따른 후폭풍이라고 보고 있다. 생산활동이 사실상 마비된 자동차 업계가 대표적이다. 업계에서는 그야말로 ‘전시(戰時)’ 상황라는 아우성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국가들이 이동제한(락다운), 딜러망 폐쇄(셧다운) 등을 결정하면서, ‘판매감소→재고증가→수출감소→생산중단’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국가들에서 락다운과 셧다운을 해제하는 상황이지만,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좀처럼 자동차 수출이 회복세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5월 자동차산업 동향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현대차(005380)·기아차(000270)·한국지엠·쌍용차(003620)·르노삼성)업체의 자동차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57.6% 급감한 9만5400대에 그쳤다. 자동차 월간 수출이 10만대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3년 7월 8만6074대를 기록한 이후 16년10개월만에 처음이다. 주요국 자동차 딜러매장의 순차적 영업 재개에도 불구하고 4월 현지수요 급감에 따른 재고물량 영향이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5월 자동차 생산도 전년 대비 21.4% 급감했다.

여기에 르노삼성의 북미 수출용 모델 ‘로그(Rogue)’의 생산 중단도 영향을 미쳤다. 르노삼성은 지난 3월부로 닛산과의 위탁계약 생산이 종료되면서 로그의 생산을 중단했다. 닛산 로그가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부산공장 전체 생산량의 약 40%, 수출물량의 약 70%를 차지한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센터장은 "락다운, 셧다운이 풀리고 있지만, 자동차 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탄성 회복도가 약한 상황"이라며 "해외에서 소비자들이 사줘야, 수출을 보낼 수 있는데 아직도 재고가 쌓여있고, 소비 침체가 이어지면서 브이자(V)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자동차 부품업계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부품업체들은 완성차 업체의 수출부진, 공장가동 중단 등이 3~4개월째 누적되면서,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매출 5조원, 직원 1만2000명이 넘는 국내 2위 자동차 부품사 만도(204320)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생산직에 대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금호에이치티(214330)·대한칼소닉·아성프라텍·에이브이오(AVO)카본코리아 등의 완성차 1·2차 협력사들도 희망퇴직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부품사들의 가동률은 50~60% 수준에 그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사태가 장기화 될 경우 국내 자동차 서플라인체인(부품공급망)이 붕괴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동차에는 약 3만개의 부품이 투입된다. 핵심부품의 생산이 중단될 경우, 완성차 전체 라인이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1~2월 코로나19로 중국의 와이어링(배선장치) 생산이 중단되면서, 현대·기아차와 쌍용차의 생산라인이 최대 6일 간 동안 멈추기도 했다.

고 센터장은 "자동차 부품업체가 손익분기점(BEP)를 맞추기 위해서, 완성차 업체 대비 20~30% 높은 공장가동률이 나와야 하지만, 현재 상황이 좋지 못하다"면서 "핵심부품을 생산하는 업체 몇 곳만 문을 닫아도, 그 여파는 국내 완성차 업계 전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지난 11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자동차 부품업계 지원을 위한 재원 조성을 위한 자동차산업 상생특별보증 협약식에 참석해, 관계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박종원 경남 부지사, 조인철 광주 부시장, 이승호 대구 부시장, 신달석 자동차산업협동조합 이사장,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성윤모 산업부 장관, 박영선 중기부 장관,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정윤모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우범기 전북 부지사, 최장혁 인천 부시장, 박성훈 부산 부시장 /산업부 제공
지난 11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자동차 부품업계 지원을 위한 재원 조성을 위한 자동차산업 상생특별보증 협약식에 참석해, 관계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박종원 경남 부지사, 조인철 광주 부시장, 이승호 대구 부시장, 신달석 자동차산업협동조합 이사장, 정만기 자동차산업협회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성윤모 산업부 장관, 박영선 중기부 장관,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 정윤모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우범기 전북 부지사, 최장혁 인천 부시장, 박성훈 부산 부시장 /산업부 제공
◇ 생산 차질 지속되면 3분기 경기 회복 어려울 듯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재고 급증으로 인한 생산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3분기부터는 경기 회복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이 어그러질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올해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각각 0.1%와 –0.2%로 전망한 정부와 한은은 2분기 경기가 저점을 찍을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미국과 EU 등 선진국의 경제봉쇄가 해제되는 3분기부터는 수출이 회복될 것이라는 게 기본 전제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재고, 출하 동향을 볼 때 수출 감소폭이 다소 줄어든다고 해도 생산이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경제연구원의 고위 관계자는 "가동률과 재고율 등 제조업 생산 관련 지표가 예상보다도 훨씬 좋지 않은 상황으로, 재고가 일정수준 이상 소진되지 읺은 이상 생산이 회복될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면서 "수출이 다소 나아지더라도 제조업 경기가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제조업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고용, 투자 등도 회복세를 나타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5월 제조업 가동률 63.6%는 역대 여섯번째로 낮은 수준으로 추가적으로 하락하게 되면 역대 최저치인 1980년 9월 61.5% 이하로 내려갈 수도 있다. 경기흐름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1월이후 21개월 4개월만에 최저치인 96.5까지 떨어졌지만, 경기가 저점을 찍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확장적 재정정책의 효과 등을 디시 한번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코로나 위기 대응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으로만 60조원을 추가 지출하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효과가 ‘수요 회복에 따른 생산 증가’라는 실물경제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게 확인된 것"이라며 "정부 재정 지출이 경제전체에 선순환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지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