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 허벅지 쓰다듬었는데 강제추행 무죄... 대법 "다시 재판하라"

정준영 기자
입력 2020.03.26 12:34
'쓰다듬는데 가만 있더라' 동석자 진술에 2심선 무죄

대법원/조선DB
대법원/조선DB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 허벅지를 쓰다듬었다가 강제추행죄로 기소된 미용업체 대표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유죄 취지로 다시 재판받게 됐다. 대법원은 피해자 의사에 반해 기습적으로 이뤄진 추행의 경우 피해자가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아도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했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는 26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여성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는 부위인 허벅지를 쓰다듬는 것은 피해자 의사에 반해 이뤄진 것인 한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추행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성범죄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으므로 사건 당시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더라도 강제추행죄 성립에 지장이 없다"고 덧붙였다.

미용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2016년 2월쯤 노래방에서 가진 직원 회식에서 20대 가맹점 여직원을 옆자리에 앉힌 뒤 볼에 입을 맞추고, 허벅지를 쓰다듬은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은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며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하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와 취업제한 5년도 명령했다.

2심은 그러나 A씨가 피해자의 허벅지를 쓰다듬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무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강제추행죄를 적용하면 위력에 의한 추행죄 등과 사실상 구분할 수 없게 된다"며 "폭행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유형력 행사가 있는 경우에만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다른 회식 참석자들의 진술 내용이나 상황 인식 등에 비춰 폭행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유형력 행사가 있던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회식 동석자들이 1심 재판 때 'A씨가 허벅지를 쓰다듬는 것을 봤는데 직후 피해자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점 등도 고려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피해자가 신체접촉에 명시적·묵시적으로 동의했다고 볼 수 없고, 회식 분위기 등에 비춰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동의나 의사에 반하지 않는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상대방을 폭행·협박으로 저항할 수 없게 한 경우뿐만 아니라 폭행과 추행이 동시에 이뤄지는 기습추행도 강제추행으로 인정하고, 이때 폭행행위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면 될 뿐 힘의 차이를 가리지 않아왔다.

이에 따라 △옷 위로 엉덩이나 가슴을 쓰다듬는 행위 △피해자 의사에 반해 어깨를 주무르는 행위 △교사가 이성학생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거나 귀를 쓸어 만지는 행위 등도 기습추행으로 판단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