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칼럼] 한국 경제, '반도체 착시' 경고

조선비즈 논설주간
입력 2020.01.14 06:00
지난 2017년에 한국은행은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세 번이나 상향조정했다. 당초 2.5% 성장을 예측했다가 4월에 2.6%로, 7월에 2.8%로, 10월에 3.0%로 수정했다. 이렇게 세 차례 연속 성장률 전망치가 높아진 것은 한국 경제가 금융위기 충격에서 회복중이던 2010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정부·여당은 한껏 고무돼 있었다. 3% 성장이 정권 교체의 결실이고, 소득주도성장의 성과인 것처럼 자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보낸 영상 축사에서 "요즘 우리 경제 특히 고용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많지만 전체적으로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되고, 성장률도 지난 정부보다 나아졌고, 전반적인 가계소득도 높아졌다"고 했다.

물론 완전한 착각이고 의도적인 왜곡이었다.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다는 주장은 명백한 허위였고, 가계소득 증가는 하나마나한 이야기였다. 경제가 성장하면 가계소득도 늘어나는 게 당연하다. 오히려 저소득층 가구 소득이 줄어들고 소득불균형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전반적인 가계소득이 높아졌다고 현실을 호도한 게 문제였다.

2017년 성장률은 3.2%로 한국은행의 마지막 수정 전망치보다 높았다. 정권이 바뀌면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좀더 들여다보면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었다. 3%대 성장의 1등 공신은 반도체 산업의 대호황이었다. 최대 수출상품인 반도체 수출이 57%나 늘어나며 성장률을 끌어올렸다. 정권 교체와 소득주도성장의 기여는 전혀 없었다.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산업은 성장 둔화·정체의 이상징후를 드러내고 있었다. 2017년 3분기에 주요 상장사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제자리 걸음에 그쳤다. ‘반도체 착시’에 대한 경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무시한채 3%대 성장 회복을 자신들의 치적으로 포장했다.

작년에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한국은행은 연초 2.6% 성장을 예측했다가 4월에 2.5%, 7월에 2.2%, 10월에 2.0%로 세 차례 연속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파장 등 여러 요인에 더해 반도체 수출이 전년보다 26%나 줄어든 타격이 컸다. 반도체 착시효과가 사라지면서 한국 경제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많았다.

올해는 다시 한번 반전이 예상되고 있다. 새해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연일 고공행진하고 있다. 두 회사 시가총액 합계는 지난 10일 기준으로 467조원으로 유가증권시장 전체 시가총액의 31.5%에 이르렀다. 역대 최고 기록이다. 13일에도 두 회사 주가는 각각 6만원, 10만500원으로 사상 최고 기록을 이어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가 펄펄 날고 있는 것은 반도체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5G와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진전과 함께 반도체 수요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작년에도 물량 기준으로는 반도체 수출이 7월부터 증가세를 나타냈다. D램 가격은 아직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낸드플래시 가격은 오름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다. 업황 회복에 대한 기대만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시가총액 비중이 사상 최고를 기록한 것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증시는 꿈을 먹고 산다"는 말로 이해하고 합리화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반도체 산업이 역대 최고 호황을 구가했던 2017~18년에도 두 회사 시가총액 비중은 30%를 넘지 못했다.

이는 한국 경제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산업이 반도체 뿐이라는 불편한 현실의 반영이다. 주력 산업이 위축되고 신산업 육성은 지지부진한 상태여서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편중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상황이 악화됐다는 게 시장의 지배적인 판단이다. 증권시장의 반도체 쏠림 현상이 더 우려되는 이유다.

정부는 이번에도 ‘착시 경제’에 대한 경고를 외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견강부회와 아전인수가 이 정부 DNA에 새겨져 있는 고유 특성이다. 반도체 착시 효과에 대해 정부가 실력을 발휘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같은 억지와 궤변의 본능을 수시로 드러내고 있다. 정치공학적 통계 선별과 왜곡으로 정부 스스로 ‘착시’를 조장하기도 한다.

대통령은 최근 신년사에서 "역대 최고 고용률을 기록했고, 고용의 질도 개선됐고, 지니계수와 5분위 배율, 상대적 빈곤율 등 3대 분배지표가 모두 개선됐고, 수출 세계 7위를 지켰고,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와 11년 연속 무역흑자를 기록했다"고 자랑했다. 한국 경제가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대다수 국민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경제 현실과 딴판이다.

새해 경제는 최소한 지표상으로는 호전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기저(基底)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반도체 경기 회복의 착시 효과도 나타날 것이다. 이는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위기가 될 수도 있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지만 반대로 기회 속에 위기가 숨어 있기도 하다. 경기 호전의 허상에 취하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구조개혁에 더 소홀해질 위험이 크다. 한국 경제가 다시 한번 갈림길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