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포커스] 일본 수출 규제 그 후…애물단지 된 ‘해외 특화 카드’

이윤정 기자
입력 2019.11.08 14:28 수정 2019.11.08 15:39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외 여행에 대한 혜택을 집중 탑재한 ‘해외 특화 카드’에 대한 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범용 카드 대비 수요가 다소 적어도 고객 선택권 확대 차원에서 발급해왔지만, 정치적·지정학적 리스크를 생각하면 차라리 출시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8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최근 카드사들은 일본 관련 카드를 단종시키거나 마케팅을 완전히 접었다. 현재 농협카드만이 지난해 출시한 ‘올바른 트래블(TRAVEL) 카드(일본 특화)’를 운영 중이다. 농협카드 관계자는 "수치를 확인해본 것은 아니지만, 일본 수출 규제 이후 신규 가입자는 줄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단종까지는 아직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추가 프로모션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왼쪽은 우리카드가 지난 6월 출시하자마자 5일 만에 판매를 중단한 ‘카드의정석 제이쇼핑(J.SHOPPING)’, 오른쪽은 농협카드가 발급 중인 ‘올바른 트래블(TRAVEL) 카드(일본 특화)’./우리카드, 농협카드
왼쪽은 우리카드가 지난 6월 출시하자마자 5일 만에 판매를 중단한 ‘카드의정석 제이쇼핑(J.SHOPPING)’, 오른쪽은 농협카드가 발급 중인 ‘올바른 트래블(TRAVEL) 카드(일본 특화)’./우리카드, 농협카드
일본 시장이 위축되자 일부 카드사는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베트남 여행 특화 카드인 ‘카드의정석 베트남여행’을 내놓은 우리카드가 대표적이다. 이 카드는 베트남 현지 전 가맹점 이용금액의 5%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비씨카드는 태국과 베트남 방문 고객을 대상으로 왕복 항공권 등을 제공하는 경품, 캐시백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동남아 특화 카드가 추가로 나오거나 관련 마케팅이 확산하지는 않고 있다. 이번 일본 사태를 계기로 해외 특화 카드에 대한 위험성이 크게 부각됐기 때문이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역사적 특수성이 있는 만큼 리스크가 상존하긴 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른 국가 역시 정치적·지정학적 리스크가 없는지 되짚어보게 됐다"며 "언제든 국가 간 마찰이 생길 수 있는 만큼 해외 특화 카드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들 역시 언제든 양국 국민 간 감정 악화나 불매운동 등이 벌어질 수 있다. 실제 중국의 경우 지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여파로 한국을 찾는 중국인이 급감한 것은 물론, 중국 내 한국 기업과 한국인에 대한 인식도 급격히 악화됐었다. 베트남 역시 전력이 있다. 2010년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이 결혼 1주일 만에 남편 폭력으로 숨지자 베트남 내에서 반한감정이 급속도로 확산한 바 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최근 동남아인과 국제결혼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언제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해외 특화 카드는 애초에 수익이 많이 나는 카드가 아니다. 해당 국가에 자주 가는 고객이 주요 타깃이 돼야 하는데, 이같은 고객은 전체 고객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카드사들이 해외 특화 카드를 내놨던 이유는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현 상황으로선 해외 특화 카드를 유지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 카드업계의 시각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 판매를 위해선 전산 유지, 카드 플레이트 재고 유지 등이 필요해 수익이 나지 않는 카드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도 카드사 입장에서는 손해"라며 "평상시엔 고객 선택권을 위해 해외 특화 카드를 만들어두려고 하지만, 사고라도 나면 해당 국가 카드를 보유하고 있는 것보다 차라리 없는 것이 여론 상으로는 나아보이는듯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