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藥이 되는 장내 미생물… 알츠하이머·암까지 고친다

유지한 기자
입력 2019.11.07 03:12

장내 미생물과 유전자 결합한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개발 한창 치매 생쥐에 건강한 미생물 투여… 기억·인지기능 회복되는 것 확인 최근 체내 전달·작용 원리 밝혀내… 골수 등 다른 면역 체계에도 영향


장에서 소화를 돕는 역할로만 알려졌던 미생물이 다양한 질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치료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장내 미생물과 유전자를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치료제 연구·개발도 한창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은 미생물(microbe)과 생태계(biome)를 합친 말이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 규모는 올해 1억4200만달러(약 1600억원)에서 2024년 93억8750만달러(약 11조원)로 연평균 131% 성장할 전망이다.

염증부터 알츠하이머병까지 치료

우리 몸속에는 미생물이 100조개 이상 산다고 알려졌다. 무게로 치면 무려 1㎏이나 된다. 대부분 대장이나 소장 등 소화기관에 있다. 장내 미생물이 우리 몸 전반에 작용하는 것이 확인되면서 이를 치료에 이용하려는 연구도 활발하다. 질병을 치료할 유익한 미생물을 찾아내거나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는 식이다.

초기에는 만성 염증을 치료하는 등 소화기관 계통의 질병 치료 연구가 주를 이뤘다. 부산대 의과학과 문유석 교수 연구진도 최근 생쥐 모델에게 유전자가 재조합된 '유익한' 대장균을 장내 점막에 전달해 염증이 완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연세대 윤상선 교수팀은 생쥐의 장에서 '박테로이데스 불가투스'균이 콜레라균 감염에 높은 저항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최근에는 암이나 퇴행성 뇌질환으로 장내 미생물 연구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포드번햄의학연구소(SBP) 등 세 병원 공동 연구진은 지난 4월 면역계를 활성화해 암세포 증식을 방해하는 장내 미생물을 발견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했다. '락토바실러스 아니말리스' '락토바실러스 무리누스' 등 11종이 항암 효능을 보였다.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잘 구축된 생쥐는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증식이 더딘 것을 확인했다.

묵인희 서울대 교수와 배진우 경희대 교수 공동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로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할 단서를 찾았다. 먼저 연구진은 알츠하이머성 치매 증세를 유발한 생쥐에게서 병세가 나빠질수록 정상 생쥐와 장내 미생물 구성의 차이가 벌어지는 현상을 확인했다. 치매 생쥐 모델의 장내 미생물 군집의 종 구성이 정상 생쥐와 다르게 변형된 것이다.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의 균형이 깨진 알츠하이머성 치매 생쥐 모델에게 16주간 주기적으로 건강한 쥐의 대변에 있는 장내 미생물을 이식했다. 그 결과 치매 생쥐 모델의 기억과 인지 기능 장애가 회복되고, 뇌에서 단백질 축적과 신경세포의 염증 반응도 완화됐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미생물의 면역계 조절 과정도 밝혀져

애초 장내 미생물은 몸 안에서 소화효소로 분해되지 않은 성분을 발효시켜 영양소와 에너지의 공급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만 알려졌다. 장내 미생물에 대한 생각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장내 미생물이 소화기 질환뿐 아니라 다른 질병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제프리 고든 교수가 이끈 워싱턴대학교 연구진은 2006년 비만을 일으키는 장내 미생물을 발견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벨기에 연구진은 삶의 질에 관한 설문 조사와 장내 미생물 구성 사이를 비교해, 장내 미생물이 우울증과도 관련 있음을 밝혔다. 신경을 활성화해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뇌 속 '도파민'을 생산하는 장내 미생물 두 종이 우울증 환자에게는 없었다는 내용이다. 이 외에도 장내 미생물이 자폐증, 아토피 피부염, 암, 알츠하이머병 등 다양한 질병과 관련됐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알려졌다.

최근에는 미생물 조성 분석에 그치지 않고 우리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구체적 원리도 밝혀지고 있다. 포스텍 융합생명공학부 이승우 교수팀은 장내 미생물의 신호가 인체의 다른 조직에 전달되는 과정을 미국 혈액학회지 '블러드' 10월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DNA 등이 포함된 장내 미생물의 부산물이 혈액을 통해 골수까지 이동하는 것을 포착했다. 골수에서는 면역세포인 단핵구세포 'CX3CR1+'가 이를 인식한다. 이후 CX3CR1+는 신체의 방어 체계를 제어·자극하는 신호 물질인 사이토카인을 분비해 피를 만드는 조혈 작용을 조절한다. 미생물이 온몸으로 전달되면서 면역 체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 신호가 폐와 간, 뇌, 골수 등 인체 다른 조직에도 전달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