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 안 주는 기업 면담하자”…기업 관리 고삐 죄는 국민연금

김소희 기자
입력 2021.02.26 15:06 수정 2021.02.26 16:18
3월에 ‘블랙리스트’ 2곳 공개 가능성도 있어

국민연금이 지난해 배당을 적게 주거나 ESG(환경·사회·거버넌스) 부문에서 문제가 있는 기업이라고 판단해 중점적으로 관리한 기업이 100개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전인 2019년보다 관리 대상 기업이 80% 넘게 급증했다. 국민연금은 이런 기업들에 서신을 보내거나 면담을 요구하면서 문제를 개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종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관리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다음 달 이런 블랙리스트 기업 중 2곳의 이름을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2019년에도 남양유업(003920)이 배당을 적게 준다며 배당 확대를 공개적으로 요구해 남양유업과 갈등을 빚기도 했었다. 특히 국민연금은 배당뿐 아니라 ESG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준을 못 맞추는 기업에 대해 관리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방침이어서 국민연금의 기업 고삐 조이기는 점점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경영 참여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러스트=정다운
일러스트=정다운
26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110개의 기업을 관리 대상으로 선정하고 225건의 서신 발송과 면담 등 대화를 진행했다. 2019년보다 관리 대상 기업 수(60개)는 83%, 대화 횟수(149건)는 51% 증가했다.

현재 국민연금이 관리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우선 기업 정기 평가 결과 ‘중점 관리 사안’에 해당하는 경우 기업을 최소 1년에서 최장 3년간 관리한다. 또 정기 평가에서 문제가 없더라도 ESG부문에서 예상하지 못한 이유로 기업가치를 훼손하거나 주주권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별도의 평가를 진행해 관리 대상 기업으로 정한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관리 대상 기업을 상대로 가장 많이 문제 삼은 사안은 ‘저배당 성향 (31건)’이었다. 또 ‘예상하지 못한 ESG 관련 우려(28개사)’와 ‘횡령·배임 등 법령상 위반우려(25개사)’도 문제기업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그래픽=정다운
그래픽=정다운
국민연금 전문위원회 소속 한 위원은 "국민연금의 기업 관리 강도는 더욱 심화할 것"이라면서 "최근 기금운용위원회 위원들 사이에서도 경영 참여 건수를 높이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선정한 관리 대상 기업이 되더라도 모두 대외로 공개되지는 않는다. 국민연금은 처음에는 서신이나 면담 등 비공개 대화로 기업에 문제를 개선하도록 요구(비공개 대화 대상기업)한다. 그럼에도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비공개 중점관리기업으로 정해 압박 강도를 높인다. 비공개 방식이 충분하지 않으면 기업 명단을 언론 등을 통해 공개(공개 중점관리기업)한다. 명단을 공개해도 기업이 국민연금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주주제안 등으로 배당 확대 등을 공식 요구한다.

그래픽=정다운
그래픽=정다운
지난해 12월 기준 비공개 대화 대상기업은 37개, 비공개 중점관리기업은 2개에 해당했다. 현재 국민연금이 공개 중점관리기업으로 전환해서 문제 삼는 기업은 없다.

다음 달에는 국민연금이 명단을 공개하는 기업이 나올 수도 있다. 국민연금이 2019년 비공개 정기 평가를 진행한 결과 A 기업은 임원 보수가 과도하다고 지적받았고, B 기업은 국민연금이 이사·감사위원 선임에 반대 의결권을 지속적으로 행사했는데도 선임을 강행했다. 이들 기업은 현재 비공개 중점관리기업으로 3월까지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으면 기업명이 공개된다.

기업명이 공개되면 국민연금과 기업 사이 갈등도 예상된다. 남양유업(003920)현대그린푸드(005440)가 2018년 5월 저배당 기업으로 공개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됐다. 당시 국민연금은 2019년에는 남양유업에 배당을 요구했다가 회사 측이 반발하자 주주제안을 하면서 대립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중점 관리하는 기업들을 늘리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과도한 경영 참여가 기업의 자율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대주주라면 모르겠지만, 지분율이 낮은 상태에서도 과도하게 경영에 참여할 명분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국민연금의 본래 역할인 수익률 증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