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사람" 홍남기 구박에 경제부처 '격앙'…"정말 나쁜건 선거용 정책"

세종=박성우 기자
입력 2021.02.26 06:00
부총리를 "정무직" "나쁜사람"으로 부른 여당
"하대가 도를 넘었다" "표 때문에 공직자 모욕" 격앙
전문가 "기재부가 재정을 고민하는 건 존립 근거"
홍남기 경제부총리 거취 판단에 ‘시선집중’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4차 재난지원금 결정 과정에서 당에 공개 반기를 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정말 나쁜 사람"이라며 강하게 질타한 것이 알려지면서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재정건전성을 중요시하는 경제부총리에게 집권 여당 대표라는 권위를 내세워 ‘나쁜 사람’이라는 상식 밖의 비난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의 예산을 편성하고 관리·감독하는 것은 행정부의 권한이다. 특히 지출에 있어 나라의 곳간인 재정을 고민해야하는 것은 기재부의 의무지만, 180석 의석을 확보한 여당이 이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 편성권을 갖고 있는 기재부를 포함한 경제부처에서는 "정치인들의 공무원 하대(下待)가 도를 넘어섰다"는 격앙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4차 재난지원금과 관련 "늦지 않게, 충분한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편성토록 하겠다"고 말해 삼권분립에 대한 ‘월권(越權)’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국회는 예산 심의를 담당하지만, 재정당국인 기재부에 구체적인 예산 편성을 지시하는 것은 대통령의 권한인데, 이 대표가 대통령 권한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연합뉴스
◇내각 서열 2위를 ‘나쁜 사람’이라고 부른 여당… "모욕, 비상식적 언행"

26일 국회 등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지난 14일 비공개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홍 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당신들은 정말 나쁜 사람"이라며 "지금 소상공인들이 저렇게 힘든데 재정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국민의 고통 앞에 겸손해야 한다"며 어느 때보다 강한 기조로 발언했다고 한다.

기재부 등 경제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이 대표의 ‘나쁜 사람’ 발언에 대해 격앙된 반응이 여과없이 나오고 있다. 집권 여당 대표가 국가 기구의 기능을 무시하는 몰상식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노조가 이낙연 대표의 나쁜 사람 발언을 비판하는 공개성명을 내야 한다는 주장도 빚발치고 있다.

한 기재부 과장은 "정부의 부총리한테 ‘나쁜 사람’이라는 감정적인 단어를 사용한 것은 존중과 예의가 없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과장은 "빚을 내서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것은 카드값처럼 언젠가는 갚아야 할 돈인데, 꼼꼼하게 지출 요인을 확인해서 효율적으로 쓰자는 의견을 제기했다고 ‘나쁜 사람’이라고 모욕하는 것은 비상식적인 언행"이라고 지적했다.

한 경제부처 국장급 간부는 "선거에서 표를 의식한 정치권에서 터무니없는 숫자의 예산 편성을 요구한다고 공무원이 거짓말을 하면서 동조하는 게 바람직한 국가운영이냐"고 반문한 뒤, "정치권 요구가 강할 수록 공무원들은 재정여건을 감안한 현실적인 방법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런 이야기를 수용해야 균형이 맞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처 국장급 간부도 "과거 정부에서는 선거를 앞두고는 추경을 편성하지 않는 게 공정하고 염치가 있는 국정운영이라는 암묵적인 합의 지점도 있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이런 묵계도 없는 것 같다"면서 "선거용 선심 정책을 남발하는 게 정말 나쁜거 아니냐"고 말했다.

◇일상화 된 경제부총리 패싱·사퇴·막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법인세,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인상 등 주요 세금 정책과 부동산 정책 기조를 두고 담당 부처인 기재부를 건너 뛰고 여권이 주요 의사결정권을 독점하는 이른바 ‘기재부 패싱’은 일상다반사가 된 상태다.

그러나 최근에는 ‘패싱’을 뛰어넘어 기재부의 수장인 홍남기 부총리를 인격적으로 하대하거나 모욕을 주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월 한 토론 방송에서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는 홍 부총리의 발언을 두고 정세균 국무총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강력비판한 데 대해 "기획재정부 곳간지기를 구박한다고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구박한다’라는 표현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 분위기였다. 구박은 보통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사용하는 말이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구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진 않는다. "언제부터 경제부총리가 여당 대표의 하급자였냐"는 날선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이에 홍 부총리도 페이스북을 통해 "재정이 제 역할을 안 한다고, 단순히 곳간지기만 한다고 기재부를 폄하하는 지적이 있다. 적절하지 않은 지적이고 또 그렇게 행동하지도 않았다. 기재부를 향한 어떠한 부당한 비판도 최일선에서 장관(홍 부총리)이 막겠다"면서 날을 세웠다. 이 대표가 여러 차례 사용했던 ‘곳간지기’라는 표현을 언급하며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달 초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 대표의 월권성 추경 편성 지시에 홍 부총리가 반발하자, 여당에서 경제부총리 사퇴를 요구하며 홍 부총리를 ‘정무직 공직자’라고 표현한 것도 모욕적인 표현으로 공직 사회에서는 받아들인다. 당시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민 고통을 덜어드리고자 당정 협의하겠다는 연설을 정무직 공직자가 기재부 내부용 메시지로 공개 반박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잘못된 행태"라고 했다.

최 대변인이 "정무직 공직자"라고 표현한 당사자는 홍 부총리였다. ‘정무직’이라는 말로 ‘선출직’ 의회 권력과의 차이를 강조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페이스북 글을 ‘기재부 내부용 메시지’로 지칭한 것이다. 한 경제부처 고위 관료는 "홍 부총리가 경제부총리로서 갖고 있는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중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라면서 "현 집권층이 국가기구와 이를 운영하는 관료사회를 정치인들의 심부름꾼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월 손실보상제 법제화 방침에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이 "법제화한 해외 사례를 찾기 어렵다"며 우회적 반대 의사를 밝힌 사실을 보고받고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 "개혁 저항 세력"이라고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홍 부총리를 "전쟁 중 수술비를 아끼는 자린고비", "무소불위 기재부의 나라" 등의 표현을 쓰며 저격했다.

◇대통령 말에도 당정은 ‘삐걱’... 선거용 정책 막으려는 부총리 결단 필요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홍남기 부총리 등 최고위급 관료들에 대한 정치권의 모욕적인 언사를 대통령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 첫번째 경제부총리인 김동연 전 부총리는 소득주도성장 노선에 대해 청와대 참모 및 여당 지도부와 불편한 관계를 형성했지만, 그 당시 여당 지도부는 김 전 부총리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경제부총리의 권위를 무시할 수 없는 정권 초기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기를 1년 남짓 앞둔 대통령과 여당, 측근들 사이에서는 균열의 조짐이 발견되고 있다.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 인사를 놓고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갈등을 빚다가 ‘패싱 논란’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문 대통령이 당부했던 ‘검찰개혁 속도조절’을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언급하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워딩이 그게 아니지 않냐"며 당정이 엇박자를 내는 모습을 연출했다.

여기에 문 재통령의 측근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의 속도조절 당부에도 신속한 추진과 여당의 편을 드는 발언을 하면서 논란이 됐다.

일각에서는 ‘홍두사미’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여권의 반시장적인 정치 공세에 끌려다니기만 했던 홍 부총리의 처신이 하대 분위기를 조장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전직 경제부총리는 "당정 간 논의는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논쟁하고 외부적으로 국민에게는 통일된 메시지를 내야 하는 것이 도리이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이 과도하게 반시장적인 요구를 할 때는 소신있게 반대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면서 "경제부총리가 반대 의견을 내면 끝까지 관철하는 과단성도 보여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제계에서는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을 앞두고 추진되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4차 재난지원금 이후 추진될 전국민위로금 등에 최소한의 경제원칙이라도 반영시키기 위해서는 홍남기 부총리의 과단성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제단체 고위 임원은 "홍 부총리가 ‘전국민 보편지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수차례 말했음에도 대통령이 여당의 전국민 지원금 지급에 손을 들어준 상황이기 때문에, (홍 부총리가)현재의 자리를 지킬 여건도 아닌 것 같다"면서 "홍 부총리 입장에서는 자신의 소신이 공언(空言)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사직 표명 등 보다 결연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