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기만한 네이버 검색 조작, '문과생 알파걸' 6인이 잡았다

세종=최효정 기자
입력 2021.01.12 14:01 수정 2021.01.15 09:19
공정위, 지난해 네이버 집중 제재나서
포털 1위 점유율 악용해 소비자 기만하고 경쟁사 배척
알고리즘 조작 잡아낸 ‘문과생’들의 승리

네이버 검색 알고리즘 조작을 밝혀낸 것은 ‘문과생’ 노력의 승리였다. 지난해 네이버 쇼핑과 동영상 및 부동산의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를 제재한 공정거래위원회 직원 6인의 이야기다. IT전문가가 아닌데도 낯선 전산언어를 익혀 끈질기게 조사한 끝에 네이버 검색 결과가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네이버의 방어논리를 공박하기 위해 ‘네이버 부동산’을 통해 자신의 집을 매매하는 열정도 보였다. 공정위는 이들을 ‘2020년 올해의 공정인’으로 선정했다.

공정위는 12일 네이버 시장지배력 남용 사건을 담당한 서비스업감시과 하은광·이유진·정소영·김경원 사무관 및 이정민 조사관, 기업집단정책과 김현주 사무관을 2020년 올해의 공정인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네이버 본사./조선DB
네이버 본사./조선DB
공정위는 지난해 국내 포털 점유율 1위인 네이버를 집중 제재했다. 네이버가 막강한 점유율을 바탕으로 한 시장지배력을 남용해 부당하게 경쟁사를 배척하고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지난 2019년 ICT(정보통신기술)전담반이 발족한 이래 독점 플랫폼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제재한 최초 사례다.

공정위는 우선 네이버가 쇼핑·동영상 분야에서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사서비스를 우선 노출시킨 것에 는 과징금 267억원(쇼핑 부분 265억원, 동영상 부문 2억원)을 부과했다. 네이버가 그간 검색순위를 조작해 자사 제품이나 동영상을 먼저 띄우는 등 자사를 우대해 경쟁을 왜곡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또 네이버가 부동산정보업체(CP)와 계약하면서 자신에게 제공한 부동산 매물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지 못하도록 한 행위에도 과징금10억3200만원을 부과했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네이버부동산이 이를 악용해 CP로 하여금 카카오 등 경쟁사에 부동산 정보를 제공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경쟁사의 시장진입을 방해했다는 것이 공정위 설명이다.

네이버 사건은 공정위 내부에서도 매우 까다롭게 여겨졌다. 알고리즘 조작은 IT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이 입증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서다. 하지만 결국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끈기’의 힘이었다. 알고리즘 사건에는 이유진(7급 공채)·정소영(행시 60회)·김경원(59회)·김현주 사무관(51회)과 이정민 조사관(변호사)이 투입됐는데, 전원이 경제학이나 행정학, 영문학 등을 전공한 ‘문과생’이라 IT기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포기는 없었다. 두 차례 현장조사를 거쳐 수집한 증거자료의 포렌식을 진행할 때마다 암호같은 결과가 쏟아졌지만 끈기있게 달라붙었다. 개념을 스터디하고 개인 공부가 모자랄 때는 공정위 내부 전산 전문가를 초빙해 교습을 받았다. 이 ‘집중과외’는 조사기간 내내 이어졌다. 과거 네이버에서 일했던 직원을 수소문해 불러 꼼꼼히 따져묻느라 이틀 내내 진술을 받기도 했다. 그 결과 이들은 네이버의 알고리즘 조작을 입증해 수백억원대 과징금 처분을 받아냈다.

김성근 공정위 서비스업감시과장은 "전세계적으로 알고리즘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알고리즘 사건 자체가 워낙 복잡하고 전문적이어서 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려운데, 세계 경쟁당국 중 거의 가장 빨리 포털의 알고리즘 사건을 잡아낸 것"이라며 "직원들이 자칫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조사해 위법성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증거자료가 부족하면 직접 만들기도 했다. 부동산 사건을 담당한 하은광 사무관(행시 50회)은 조사 기간 중에 마침 세종시 소재 아파트를 매매할 일이 생겼는데 사건 조사에 활용하기 위해 네이버부동산을 매매 거래에 활용했다. 네이버에 정보를 제공하면 타사에는 제공하지 못하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례는 결국 최종 증거자료로 채택돼 혐의 입증에 쓰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네이버의 시장지배력 남용 사건을 담당한 직원 6인을 올해의 공정인에 선정한다고 밝혔다./공정위 제공
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네이버의 시장지배력 남용 사건을 담당한 직원 6인을 올해의 공정인에 선정한다고 밝혔다./공정위 제공
이같은 노력으로 혐의 입증에 성공한 이들은 입사 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부터 공정위 근무 경력이 3년에 못 미치는 젊은 인재들로 구성됐다. 이유진 사무관(7급 공채)과 하은광 사무관(행시 51회), 김현주 사무관(51회)은 여러 부서를 거치며 조사 능력을 입증한 베테랑이고, 나머지 사무관들은 비교적 경력이 짧지만, 행시 등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인재다.

특히 김경원 사무관은 행시 59회 재경직 차석을 차지했고, 정소영 사무관은 행시 60회 톱10에 들었다. 모두 여성인 이들은 미래 공정위를 이끌어갈 핵심 인재로 꼽힌다. 공정위가 이들을 올해의 공정인에 선정한 것은 사건의 난이도 및 상징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로 알려졌다.

네이버는 공정위 제재에 불복해 항소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네이버는 입장문에서 "공정위가 충분한 검토와 고민 없이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검색 알고리즘 조작은) 사용자들의 검색결과를 최적화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일뿐 다른 업체 배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거대 플랫폼 기업 독과점 문제 해결에 집중할 계획이다. 신산업인 플랫폼 사업이 기존 산업 규모를 능가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갑질’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지난해 9월 입법예고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에 대한 법제처 심사가 막바지 단계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21일 차관회의, 26일 국무회의를 거쳐 이달 안에 국회에 제출될 공산이 높다. 이 법은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민족 등 온라인 유통 플랫폼의 갑질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