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뜨자 폐배터리 시장 급성장…현대차·삼성·LG도 눈독

이재은 기자
입력 2021.01.11 16:00
전기차 폐배터리 시장 2030년 20조원 규모로 10배 성장
"배터리 수명 늘려 원가 절감하고 틈새시장 개척"
현대차, 사용 후 배터리로 ESS 만들어 태양광 발전소 운영
SK·LG는 버려진 배터리서 희귀광물 뽑아내 재활용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면서 수명을 다한 폐(廢)배터리가 미래 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기차 핵심 부품인 리튬이온 배터리는 통상 6~10년 사용하면 성능이 떨어져 새 배터리로 바꿔야 하는데, 이때 수명을 다한 폐배터리는 처분해야 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당장 2024년부터 국내에서만 1만개 이상의 폐배터리가 쏟아질 전망이다. 폐배터리를 그대로 폐기할 경우 환경오염이 우려되기 때문에 기업들은 버려진 배터리를 재활용해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폐배터리 관련 친환경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키운다는 전략이다.

테슬라 모델3./테슬라
테슬라 모델3./테슬라
11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폐배터리 시장은 2025년 이후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테슬라가 지난 2012년 선보인 전기차 ‘모델S’의 폐배터리가 지난해를 기점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폐배터리의 양이 급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2019년 200만대, 지난해 250만대를 넘어선 점을 감안하면 5~10년 뒤에는 폐배터리만 수백만개에 달할 전망이다.

배터리 업계는 전 세계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2019년 기준 15억달러(약 1조6500억원)에서 2030년이면 180억달러(약 20조원) 규모로 1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가 지난해 말 폐배터리를 지방자치단체에 반납해야 하는 의무를 폐지하면서 올해부터 폐배터리를 빌려쓰거나 재활용하는 사업도 급물살을 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전기차 폐배터리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2가지다. 기업들은 전기차에서 회수한 폐배터리를 재정비해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배터리 재사용(reuse)’과 배터리를 분해해 원재료인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추출하는 ‘배터리 재활용(recycling)’에서 사업 기회를 보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과 OCI가 공주 태양광발전소에 설치한 ESS 큐브 / OCI 제공
현대차그룹과 OCI가 공주 태양광발전소에 설치한 ESS 큐브 / OCI 제공
배터리 재사용의 경우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와 함께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ESS(에너지저장장치)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현대차와 한국수력원자력, 한화솔루션 등이 폐배터리 재사용 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현대차는 OCI와 손잡고 전기차 폐배터리를 태양광 발전에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한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현대차(005380)울산공장 내 태양광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력을 전기차 폐배터리를 모아 만든 2MWh(메가와트시)급 ESS에 저장한 뒤 다시 외부로 전력을 공급하는 친환경 발전소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충전과 방전을 거듭해 성능이 70~80%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폐배터리로 분류되는데, 이 가운데 충전 능력이 70%선을 유지하는 배터리는 ESS로 재사용이 가능하다.

김연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재사용 사업은 배터리 팩을 일부 개조하거나 기존팩 형태 그대로 ESS에 활용하는 방식"이라며 "모듈과 셀 단위 해체가 필요하지 않아 안전하고 추가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에서 자동차 OEM 및 배터리 업체들의 신규 사업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전기차 재활용 스타트업 라이사이클(Li-Cycle)이 리튬이온 배터리를 분쇄한 모습 / 라이사이클 홈페이지
미국 전기차 재활용 스타트업 라이사이클(Li-Cycle)이 리튬이온 배터리를 분쇄한 모습 / 라이사이클 홈페이지
폐배터리에서 핵심 원료를 추출해내는 배터리 재활용 기술 개발도 탄력을 받고 있다. 니켈, 코발트 등의 희귀 광물을 재활용하면 향후 배터리 생산에서 원가를 낮출 수 있어 완성차와 전기차용 배터리 기업은 물론, 화학기업과 종합상사도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잘츠기터에 배터리 재활용 시범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이 공장에서는 폐배터리를 분류해 재사용 여부를 결정한다. 충전 능력이 70% 이상으로 충분한 폐배터리는 전기차 충전기용으로 재사용한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배터리는 파쇄한 뒤 재료를 건조하고 체질하는 작업을 거쳐 니켈, 코발트, 리튬 등을 걸러낸다. 이렇게 추출한 금속은 신규 배터리 생산에 투입된다. 폴크스바겐 측은 "리튬, 니켈 등의 광물은 조달은 물론 폐기하는 것도 매우 비싸기 때문에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들도 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뛰어들었다. LG에너지솔루션(전 LG화학(051910)배터리사업부문)은 호주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엔바이로스트림과 손잡고 호주에서 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운영 중이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배터리 리스(대여)나 재사용에 필요한 인증서비스 등 'BaaS(Battery as a Service)' 모델을 적극 발굴하고 사업화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다 사용한 전기차 배터리에서 수산화 리튬을 회수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배터리 재활용에만 주력하는 스타트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테슬라 공동창업자인 JB 스트라우벨이 설립한 ‘레드우드 머티리얼’은 미 네바다주 소재 테슬라 기가팩토리에서 받은 폐배터리에서 추출한 리튬, 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등 원재료를 일본 배터리 제조사 파나소닉에 되파는 재활용 사업을 2017년부터 운영 중이다. 이 회사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등이 설립한 에너지 펀드인 BEV(Breakthrough Energy Ventures)의 투자를 받아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스웨덴 배터리 제조사 노스볼트도 2030년까지 신규 생산하는 배터리의 50%를 폐배터리 재활용 소재로 만들기 위해 스웨덴에 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건설 중이다. 노스볼트는 "2022년부터 가동을 시작하는 이 공장에서는 연간 2만5000톤의 폐배터리를 재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