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강경화에 "민감한 문제 적절히 처리하라"…'화웨이 배제 안돼' 압박?

손덕호 기자
입력 2020.11.27 06:10
"공동으로 개방·협력 인터넷 공간 구축하자"
"하이테크 기술·산업 협력 강화하자"
미중 신냉전 장기화 전망 속 방한
美 압박 속 한국과 공급사슬 안정화 목적인 듯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6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중한 사이 민감한 문제를 적절한 방식으로 처리하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공동으로 개방·협력의 인터넷 공간을 구축하자"고 했다.

미국이 한국에 5G 네트워크에서 화웨이(華爲) 등 중국 기업을 배제하는 '클린 네트워크' 동참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왕 부장이 강 장관에게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런 내용은 외교부가 발표한 한중 외교장관회담 개최 결과에는 빠져 있다.

지난 23일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세계인터넷대회에 설치된 화웨이 부스. /EPA 연합뉴스
지난 23일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세계인터넷대회에 설치된 화웨이 부스. /EPA 연합뉴스
중국 외교부가 이날 오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보도문에 따르면 왕 부장은 강 장관과의 회담에서 "한국 측이 중한 사이에 민감한 문제를 적절한 방식으로 처리함으로써 양국 간 상호 신뢰와 협력의 기초를 지켜나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더 자세한 언급은 없었지만,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에 불리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이 '민감하다'고 간주하는 사안을 한국이 '부적절'하게 다룬다면, 사드(THAAD) 배치 직후처럼 양자 관계가 크게 악화할 수 있다는 경고로도 읽힌다.

왕 부장은 또 "공동으로 평화·안전·개방·협력의 인터넷 공간을 구축하고 유엔 등 다자주의의 틀 내에서 소통과 협력을 심화하자"며 "다자주의와 국제법에 기초한 국제 질서를 수호하자"고 제안했다. 중국은 자국을 향한 미국의 통상·기술·군사 등 다방면에 걸친 각종 압박을 약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대외적으로 '다자주의'를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는 평가가 있다.

이같은 왕 부장 발언은 미국 정부가 중국 IT 기업을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배제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나왔다. 앞서 미국은 지난달 열린 제5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SED)에서 '클린네트워크'에 협력을 요청했다. 외교부는 "특정 업체 선택은 민간 업체가 판단할 사안으로,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는 화웨이를 "중공(中共·CCP) 감시 국가의 도구"라면서 "화웨이와 거래하는 것의 신인도 위험이나 잠재적인 법적 위험을 잘 따져보는 것은 모든 회사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했다. 또 LG유플러스와 달리 화웨이 장비를 쓰지 않는 SK텔레콤과 KT에 대해서는 "클린네트워크 참여 업체들"이라고 강조했다.

2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담하기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회담하기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왕 부장은 '한중 경제무역 협력 계획 2021~2025'를 조속히 제정해 하이테크 기술·산업 협력을 강화하자고 했다. 왕 부장이 강 장관과의 회담에서 첨단기술 분야의 협력을 특히 강조한 것은, 미국의 압박 속에서 한국과 공급사슬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를 강력히 원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한국에서 반도체와 화학 원료 등 많은 중간재를 수입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PC 등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의 한 종류인 D램은 거의 전적으로 한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제품에 의존한다.

왕 부장은 미국 차기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중관계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시점에 일본과 한국을 방문했다. 외교가에서는 미중 신냉전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 측에 최소한 중립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