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반도체 굴기' 상징 中 칭화유니마저 위기… 韓 반도체가 수혜?

장우정 기자
입력 2020.11.22 06:00 수정 2020.11.22 10:27
반도체 격차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 빚으로 빚 돌려 막던 칭화유니
"은행 통한 지원이나 비핵심 계열사 매각 자구책으로 일단 한숨돌릴 듯"
화웨이 이어 칭화유니마저 흔들… 시간 벌었다는 韓 반도체 업계

중국 칭화유니그룹이 지난 16일자로 만기가 도래한 13억위안(3년 만기, 약 2200억원) 사모채권을 상환하지 못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일부 원금·이자만 상환하고, 나머지는 6개월 연장해달라고 채권단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1988년 칭화대 과학기술개발총공사로 출범, 1993년 지금의 이름으로 자리잡은 칭화유니는 산하에 낸드플래시 메모리 제조사 양쯔메모리(YMTC), 모바일 칩 설계회사 유니SOC 등을 두고 있어 중국 ‘반도체 굴기(崛起·일어섬)’의 상징으로 꼽히는 곳이다. 2015년 230억달러에 세계 3대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 인수를, 2016년엔 낸드플래시를 만드는 샌디스크 인수에 나섰지만 미국 정부의 견제로 무산되기도 했다.

2018년 4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반도체 공장 시찰로는 처음으로 당시 후베이성 우한에서 낸드 플래시 메모리 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YMTC를 방문해 "반도체 기술에서 중대 돌파구를 서둘러 마련해 세계 메모리반도체 기술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런 칭화유니가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시진핑의 체면이 구겨지는 것을 넘어 중국 반도체 굴기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게다가 칭화유니는 국유기업이기도 하다. 증권가에서는 화웨이를 비롯해 최근 중국 기술 최전선에 있었던 기업들의 위기가 이어지자 한국 반도체 업계의 손익을 발빠르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잠재적 경쟁자의 출현이 뒤로 밀리기 때문이다. 중국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그러나 시간문제일뿐, 반도체 굴기는 이미 달리기 시작한 말이라는 점에서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2018년 중국 우한에 있는 YMTC 공장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자오웨이궈(가운데) 칭화유니그룹 회장, 양스닝(오른쪽) YMTC 최고경영자와 함께 반도체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YMTC 제공
지난 2018년 중국 우한에 있는 YMTC 공장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자오웨이궈(가운데) 칭화유니그룹 회장, 양스닝(오른쪽) YMTC 최고경영자와 함께 반도체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YMTC 제공
◇ 2200억 못 갚은 칭화유니

칭화유니는 기본적으로 매출 없이 빚을 내 빚을 갚는 방식으로 공격 투자하는 기업이다. △기술인재 영입을 통한 추격 △낸드플래시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 설립 등에 동시다발적으로 돈을 쏟아붓고 있다. 2014년 6월 중국 정부가 ‘반도체산업발전추진요강’을 발표하고, 1조위안(약 170조원)을 투자해 2020년 반도체 자급률 40%, 2025년 70%를 달성하겠다고 시작한 반도체 굴기 미션을 위해서다.

YMTC의 경우 현재 중국 우한에 있는 1기 공장을 월 2만장 규모에서 내년 말 10만장 규모로 증설을, 바로 옆에는 2기 공장 신축공사를 동시에 진행하며 ‘속도전’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는 칭화유니뿐 아니라 중국 국가펀드인 대기금(National Integrated Circuit Fund), 후베이성 지방정부가 자금을 댔다.

YMTC는 다른 한편으론 미국 정부 제재를 받아 D램 생산을 중단한 중국 반도체 회사 푸젠진화의 뒤를 잇고도 있다. 회사 측은 2022년까지 D램을 양산하겠다는 목표로 8000억위안(약 135조원)을 들여 D램 공장을 짓고 있다.

매년 빠르게 변화하는 선두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을 단시간에 따라잡기 위한 이런 투자는 결과적으로 칭화유니를 빚더미로 몰아넣고 있다. 중국청신 집계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칭화유니그룹의 부채 잔액은 528억위안(약 9조원), 현금 보유액은 40억위안(약 6700억원)이다. 발행한 채권 중 60% 이상이 단기 채권이다. 다음 달에도 13억위안 규모의 채권 만기가 돌아온다. 문제는 이런 자금난이 커지며 칭화유니그룹 채권 가격이 급락(채권 금리 상승)하면서 채권을 팔기도, 갚기도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 소장(용인대 교수)은 다만 "칭화유니는 반도체 굴기를 실행해야 하는 상징성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부도로 갈 가능성은 없다"면서 "현재 미국의 중국 제재 분위기도 있는 만큼 정부가 직접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방식보다는 은행을 통한 간접지원이나 비핵심 계열사 매각 같은 칭화유니 자구책으로 일단 자금을 마련하면서 추이를 지켜보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래픽=박길우
그래픽=박길우
실제 칭화유니는 YMTC뿐 아니라 산하 유니SOC를 통해 모바일 통합칩 시장에서도 최근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미국 측이 예의주시하고 있는 업체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유니SOC는 지난 2분기 기준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시장에서 점유율 4%(카운터포인트리서치 집계)로 아직은 존재감이 미미하지만,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6나노미터(nm·10억분의 1미터) 공정으로 만든 5G(5세대 이동통신) 통합칩(모바일 AP+통신칩)을 개발하고, 올해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고 밝히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유니SOC는 퀄컴, 미디어텍, 하이실리콘, 삼성전자에 이어 전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5G 통합칩을 만드는 회사가 됐다. 중국 정부가 전면에서 구원투수로 나서기 어려운 배경이다. 더욱이 중국 정부는 최근 국유기업 개혁을 재천명한 상태로 국유기업이어서 사업을 잘못해도 정부 보증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모럴해저드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최근 국유기업의 채권 디폴트가 늘어나는 것도 이 같은 기조와 무관치 않다.

◇ 속속 쓰러지는 中 추격자들, 韓 시간은 벌었지만…

중국 기술굴기에 대한 미국의 강도 높은 제재가 계속되면서 최근 화웨이는 스마트폰 알짜 브랜드인 ‘아너’를 광둥성 선전시 정부가 사실상 지배하는 컨소시엄에 매각하며 ‘생존을 위한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글로벌 통신장비 1위, 스마트폰 2위인 화웨이도 반도체 수급이 막히자 납작 엎드린 모습이다.

‘중국판 TSMC’를 꿈꿨던 훙신반도체(HSMC)도 후베이성 우한시 둥시후구 정부에 최근 인수됐다. 2017년 7나노 최첨단 미세공정이 적용된 반도체 생산을 목표로 우한에 설립된 이 회사는 우리돈 22조원가량이 투입됐지만, 공장만 일부 완공됐을 뿐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최후 보루와도 같은 칭화유니마저 정부의 추가 자금 투입이 절실한 지경에 이르자, 중국 반도체 굴기를 경계해야 한다던 시각도 옅어지기 시작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YMTC이 양산 준비 중인 128단 3D(3차원) 낸드에 적용되는 독자적 적층 기술인 엑스태킹(xtacking)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었으나, 칭화유니의 재무 문제가 불거지고 있고 최소 6개월 안에는 해결 기미가 안 보이는 만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한숨돌릴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미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내년 양산을 목표로 190단대 낸드를 개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YMTC의 128단 낸드 양산이 지체되고 있는 것만으로도 반도체 기술 추격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칭화유니의 자금난이 불거지면서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출했던 3두마차가 모두 위기에 봉착한 모양새가 됐다. 푸젠진화가 마이크론의 특허침해에 피소돼 사실상 D램 생산을 중단한 상태이고, 창신메모리가 마이크론의 특허침해 피소에 직면한 상황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칭화유니가 일단은 연구개발(R&D) 중심으로 투자하고, 공장 건설 등에서는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다"면서도 "중국은 기술면에서 빠르게 한국을 추격해오고 있고 언제든 회생 여지가 있기 때문에 안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