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수요 대폭 줄었다… 멸종 대비하라” 정유시설 폐쇄나선 전세계 석유 공룡들

최지희 기자
입력 2020.09.22 06:00 수정 2020.09.22 07:01
코로나 사태와 에너지 전환 기조에 따라 석유 수요가 급감하면서 글로벌 석유기업들이 정유시설을 영구 폐쇄하고 있다. 석유 수요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에 치달았다고 본 셈이다.

22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일본 최대 정유사 에네오스는 다음달부터 오사카 정유공장의 문을 영구히 닫기로 결정했다. 일평균 11만5000배럴를 생산해 온 대규모 정제시설이지만 수요 감소세가 이어지면서 폐쇄를 더 미룰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4월부터 6월까지 에네오스 정유소 11곳의 가동률은 68%로 급감했다.

에네오스는 도쿄 동부 가시마 정유소와 서일본 미즈시마 정유소 역시 수소 혹은 전력 생산 공장으로 탈바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오타 카츠유키 에네오스 사장은 "작년까지만 해도 일본 내 석유 수요는 2040년은 돼야 반으로 줄 것이라 예상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의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게 됐다"며 "재생 가능 에너지와 관련한 사업에 집중하는 등 다양한 개혁을 더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유 정제 설비를 바이오디젤 생산 시설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미국 CVR에너지의 정유시설 모습. /CVR에너지 제공
원유 정제 설비를 바이오디젤 생산 시설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미국 CVR에너지의 정유시설 모습. /CVR에너지 제공
세계적인 석유업체 로열더치셸도 필리핀 바탕가스주(州)의 일 평균 11만배럴 규모 타방가오 정유시설을 전면 폐쇄한다. 이 정유소가 문을 닫으면 필리핀에서 가동되는 정유공장은 한 곳만 남게 된다.

미국 최대 정유사인 마라톤페트롤리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르티네즈와 뉴멕시코주 갤럽에 있는 정유공장을 한 곳씩 영구 폐쇄할 예정이다. 뉴멕시코 소재 정유소는 코로나가 미국을 강타한 후 4월부터 가동을 멈춰왔다. 뉴질랜드 유일 정유소인 리파이닝NZ도 폐쇄를 검토하고 있다. 리파이닝NZ는 우선 생산량을 줄여 비용 절감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전세계 석유 공룡들이 막대한 자금이 투입된 정유시설을 속속 멈춰 세우는 배경에는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수요 급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전세계적 이동제한 조치로 석유 제품 수요가 크게 감소했고, 여기에 공급 과잉으로 낮은 정제 마진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정유사들의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비롯해 글로벌 정유사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석유 소비가 이전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전기 자동차 수요 증대와 전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정책 기조 등으로 과거 석유 소비자들의 행동이 영구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존기로에 선 정유업계는 저마다 탈석유를 목표로 석유 관련 사업의 덩치는 줄이고 신사업 투자에 나섰다. 세계 최대 석유사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은 하루 석유 생산량을 260만 배럴에서 150만 배럴로 낮추고 석유화학사업부를 매각했다. 대신 미국 동부 해상에서 추진 중인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11억달러를 투자했고, 전기차 충전소를 10년 동안 7500개에서 7만개로 늘리기로 했다.

일본 정유업계는 업계 1, 2위인 에네오스와 이데미츠코산 간 합병으로 수요 절벽에 대응하고 있다. 오타 에네오스 사장은 "합병에 그치지 않고 향후 전기, 가스, 화학 등 다른 산업 업체들과 더 많은 제휴를 맺을 것"이라며 "호주에서 진행하는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수소를 만드는 재생 가능 에너지 프로젝트를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 상반기에만 5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 국내 정유업체들 역시 대체 에너지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SK에너지의 모회사 SK이노베이션(096770)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 투자를 국내외 모두 대폭 늘리고 있다. 그 외에도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은 정부 주도 수소 경제 사업에 동참해 수소 충전 인프라 관련 특수목적법인 설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