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HDC현산, 지난해 말부터 금호 상대 소송 준비했다

조귀동 기자, 김우영 기자
입력 2020.09.15 06:00
2019년 아시아나 대규모 엔진 도입 놓고 항공업계 뒷조사
"HDC의 장기 실사 요구는 리베이트 의혹 등 제기 위한 포석"

지난 11일 최종적으로 무산된 HDC현대산업개발(294870)(HDC)의 아시아나항공(020560)인수와 관련해 HDC가 아시아나항공이 엔진 등 주요 부품을 들여오는 과정에서 계약상 문제가 없는지 뒷조사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2500억원 계약금 반환을 둘러싸고 금호산업(002990), 산업은행 상대의 소송이 예고된 가운데, HDC가 일찌감치 계약 무산과 이후 소송을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분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따른 매출 급락 이외에 ‘허락되지 않은 가치 유출(not permitted leakage)’ 의혹을 소송 과정에서 내세울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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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업계에 따르면 HDC는 지난해 12월 아시아나항공이 그해 예비 엔진을 대거 도입한 것과 관련해 리스 계약 내용 등을 다각도로 조사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인수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정경구 HDC 최고재무책임자(CFO) 직할 조직에서 계약 내용 등에 대해서 탐문을 했었다"며 "특히 리스 계약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 관심 있어 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8년 20개 수준이었던 예비 엔진을 올해 30여개로 늘렸다. 도입 규모는 11개이다. 항공사는 새로운 기종을 도입할 때 일반적으로 엔진 별로 10% 안팎의 예비엔진을 마련해놓는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12월 현재 항공기 86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해 에어버스 A321NEO(네오)와 A350 등 5대를 신규 도입했다. 항공사 운영 관행대로라면 예비 엔진을 한 개 정도 더 갖춰두는 수준이 적절했다.

지난해 10월 18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미국 LA로 향하려던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해 항공기가 그을린 모습. /인천 영종소방서 제공
지난해 10월 18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미국 LA로 향하려던 아시아나 항공 여객기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해 항공기가 그을린 모습. /인천 영종소방서 제공
이를 둘러싸고 당시 재무 압박을 받던 아시아나항공이 왜 대량으로 엔진을 들여왔는지 항공업계에서는 의혹이 분분했다. 항공기 엔진은 1개당 300억원이 넘는 고가 기자재다. 리스 방식이 주이긴 하지만, 현재가치로 따져서 3300억원원 정도를 지출한 셈이다. 통상 5년 정도인 감가상각 기간에 맞춰 3300억원을 정액법(감가상각 연수에 균등하게 나누어 비용을 처리하는 방법)을 적용할 경우, 올해 추가 비용 지출은 600억원이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은 6조9700억원 매출에 4400억원 영업손실을 냈다. 엔진을 대량으로 구매하면서 손실 폭을 키운 모습이다.

항공업계에서는 HDC가 아시아나항공이 엔진 도입을 위해 리베이트 등을 놓고 이면계약이 있었는지 확인하려 한 것으로 본다. 또 다른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경우 1996~2000년 에어버스 항공기 도입 계약을 맺은 뒤, 10년 뒤인 2010~2013년 1450만달러(173억원)의 리베이트를 에어버스가 지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며 "마찬가지로 아시아나항공 쪽에 리베이트가 오갔는지 HDC 쪽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베이트 등 이면계약이 있었을 경우 HDC는 향후 산업은행이나 경우에 따라 박삼구 금호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한 대형로펌 파트너급 변호사는 "그 경우 정상적인 회사 경영과 별개로 회사의 가치가 훼손된 계약이므로 ‘허락되지 않은 유출(not permitted leakage)’이라고 HDC쪽이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HDC가 회사의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계약을 맺게 되었다며, 부당하게 계약금이 책정되었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14일 산업은행은 HDC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이 최종적으로 무산됐다고 선언했다. HDC는 계약금으로 산업은행에 지불한 2500억원을 되돌려달라고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아시아나항공 가치가 예상치 못하게 대폭 줄었을 뿐만 아니라, 실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회사 가치를 파악한 상태에서 계약금만 미리 줬다는 게 그 근거다. 최대현 산업은행 부행장은 지난 14일 "금호산업과 HDC는 모두 상대방 귀책에 따른 매각 무산을 주장하고 있다"며 "계약해지 이후 반환 소송 등에 대해서 채권단이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
HDC와 금호산업의 소송 과정에서 HDC가 엔진 도입 리베이트 의혹 등을 제기할 것이라는 게 항공업계의 분석이다. 한 관계자는 "허락되지 않은 유출은 코로나19 등 ‘예기치 않은 사건(중대한 부정적인 변경 조항·MAC)’보다 훨씬 더 상위에 있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MAC이 계약이 결렬될 때 마지막으로 호소하는 장치라면, 허락되지 않은 유출은 피인수 회사의 가치평가나 매도자의 신의성실 원칙 등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설명이다. "HDC는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실사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계속 내세우면서, 결국 계약 중단을 선언했는데 그 근거로 대기에 합리적"이라기도 하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달 말 공정거래위원회는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측이 지난 2016년 계열사인 금호고속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인수한 업체에게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사업 독점권을 넘긴 것이 부당지원행위라는 판결을 내렸다. HDC는 법정공방에서 이 같이 박삼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해 그룹 지배력 유지 등 사익을 추구했다는 것을 집중 부각할 가능성인 높다. 엔진 도입 과정을 둘러싼 의혹도 그 중 하나로 주요하게 다뤄질 것이란 예상이다.

한편 아시아나항공은 "2019년 엔진 계약은 리베이트 등의 의혹과는 무관하다"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