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이사회에 해외 경쟁사 출신 들어와 경영간섭 가능해진다…기업 옥죄는 '세상에 없는 규제' 쏟아져

이재은 기자
입력 2020.09.15 06:00
기업 옥죄는 ‘공정경제 3법’에 재계 반발
"미국, 영국, 독일 그 어디에도 없는 규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지난해 3월 현대자동차의 주주총회를 앞두고 현대차 사외이사 후보로 ‘밸러드 파워시스템’의 로버트 랜달 매큐언 최고경영자(CEO)를 추천했다. 이 회사는 현대차(005380)가 신사업으로 추진하는 수소연료전지사업 부문의 경쟁사다. 엘리엇은 현대모비스(012330)사외이사에도 중국 경쟁사인 카르마 오토모티브의 로버트 알렌 크루즈 최고기술책임자(CEO)를 제안했다.

당시 대다수 주주가 주총에서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편을 들어주면서 엘리엇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적대 세력이 국내 기업에 원하는 인물을 이사로 앉히고 기업 기밀을 빼가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위험한 것은 삼성전자(005930)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지분율이 56%에 달하는데, 최대주주 지분은 이건희 회장(4.18%), 삼성물산(5.01%), 삼성생명(8.51%) 등으로 분산돼 있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최대주주 지분은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외국계 투기자본 여러 곳이 연대하면 삼성전자 감사위원으로 올라서는 것이 가능해진다. 자금력이 충분한 중국 자본이 연대해 중국 경쟁사 임원을 삼성 이사회에 침투시키는 것이 현실화될 수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모습 /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모습 / 연합뉴스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 법안이 쏟아지면서 재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경제가 침체되고 경영 활동이 위축된 상황인데, 여당이 주도하는 21대 국회는 반(反)시장·반기업 규제 관련 법안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어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현재 여당이 밀어붙이는 대다수 규제는 미국, 독일 등 선진국은 물론 세계 어느 국가에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없는 규제’라는 점에서 우려가 더 크다. 재계는 기업 경영을 어렵게 하는 규제는 결국 일자리 감소와 기업 경쟁력 악화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신중한 검토를 거듭 요청하고 있다.

최근에는 야당(국민의힘)마저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에 제동을 걸지 않기로 하면서 기업들이 막막함을 호소하고 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4일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미국 등 선진국은 코로나로 위기에 빠진 자국 기업 지원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한국은 여·야가 함께 반기업 정책 도입에 힘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 "공정경제 3법, 득보다 실 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규제는 여당 주도로 추진 중인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 등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이다. 기업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고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막아 소수 주주와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게 여당의 입법 취지다.

문제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 선출,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 등의 내용을 담은 지금의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취지와 달리 기업 경영 기밀 유출, 해외 기관투자자의 지나친 간섭, 장기 투자 부진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아 득보다 실이 클 것이란 점이다.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 중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조항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제도다. 감사위원 1명 이상을 선출 단계부터 다른 이사들과 분리 선임해 대주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재계는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해놓고 감사위원 분리 선임을 통해 이사를 뽑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이 경우 대주주는 이사회 의사 결정에 제한적으로 참여하는데, 따로 선임된 감사위원이 이사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했다가 회사가 손실을 본 경우 대주주 등의 책임은 지분율만큼 지게 되는 것이 부당하다는 설명이다. 해외 경쟁사나 투기자본이 ‘지분 쪼개기’를 통해 의결권 제한 규정(3% 이하)을 무력화하고 원하는 사람을 감사위원 자리에 앉혀 국내 기업의 기밀 경영 정보를 빼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주요 내용 / 조선일보 DB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주요 내용 / 조선일보 DB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감사위원을 분리선임하거나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지 않는다"며 "기업의 지분율이 높은 주주한테 ‘당신은 많이 투자했으니까 주식에 딸린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논리는 주식회사의 본질에 완전히 반한다"고 말했다.

상법 개정안의 하나인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기업에 큰 부담이다. 자(子)회사의 이사가 불법 행위를 저질러 모(母)회사에 손해를 입힌 경우,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재계는 이 제도가 소송 남발로 이어져 기업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다중대표소송제도 신설 시 상장회사의 소송 리스크가 3.9배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법무법인 세종은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될 경우 주주가 지주회사인 상장사의 지분 0.01%만 보유해도 소송을 진행할 수 있고, 지분 1%만 확보하면 6개월 보유기간을 갖추지 못해도 즉시 소송 제기가 가능해진다"며 "행동주의 헤지펀드 등이 단기간 내 지분을 매입해 자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 세계에서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한 국가는 일본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100%를 보유한 경우에만 해당한다. 현재 여당이 내놓은 개정안은 모회사가 지분 50% 이상을 보유한 자회사도 대상이라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정주 팀장은 "독일, 프랑스 등 대륙법 국가에서는 다중대표소송제가 체계적으로 안 맞기 때문에 도입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호주 등 영미권 국가에서도 법으로 명문화한 나라는 없다"고 했다.

삼성 서초 사옥 모습. / 조선일보 DB
삼성 서초 사옥 모습. / 조선일보 DB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논란이다. 개정안에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을 총수 일가 지분 30% 이상 회사에서 20% 이상 회사로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재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확대되면 경영상 필요에 따라 수직계열화한 계열사간 거래가 위축돼 기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근 코로나19로 글로벌 기업들은 오히려 계열사간 수직계열화를 추진하는 것이 트렌드가 됐다. 세계 곳곳에 분산된 공급망의 위험성이 커지면서 안정적인 계열사의 존재가 필요해진 상황이다.

정만기 자동차산업연합회 회장은 "일감 몰아주기 대상 기업의 기준이 되는 특수관계인 등의 지분율을 30%에서 20%로 낮추면 거래비용 최소화를 위한 정당한 내부거래도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한국 기업에 대한 규제 수준이 선진국보다 높지 않아야"

기업들은 불공정 행위 근절을 통해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여당의 입법 취지에는 동의하나,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선진국에서 도입하지 않은 전례 없는 규제를 입법화해 국내 시장에서 실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경련,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정부안이 그대로 국회를 통과할 경우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경영 부담이 가중될 것이며, 경제 회복에도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며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기업 목소리를 반영해 우리 기업에 대한 규제 수준이 외국보다 높아지지 않도록 규제 부담을 대폭 완화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