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투자 늘리는 삼성 이재용, ARM 지분도 인수?

장우정 기자
입력 2020.08.05 06:00
ARM, 한 반도체기업이 독점인수 어려운 사업구조… ‘49조원’ 몸값도 부담
‘엔비디아·삼성 등 복수 반도체기업이 지분인수하고’ ‘잔량은 IPO’ 시나리오
손정의와 친분 두터운 이재용, ‘위기의 소프트뱅크 해결사’로 나설지 주목
ARM차이나 CEO 해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지분 매각 걸림돌로 부상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에 이어 삼성전자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매물로 내놓은 ARM 유력 인수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ARM의 사업모델로 볼 때 한 반도체 기업보다는 여러 기업이 지분 투자하는 방식이 유력할 것으로 보고, 다른 기업들도 지분 인수 의사를 밝힐 것으로 예상한다.

5일 업계와 외신을 종합하면, 소프트뱅크는 ARM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방안을 엔비디아, 삼성전자(005930)등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ARM은 반도체 설계 특허를 반도체 기업에 공유하면서 성장한 회사인데, 특정 회사가 단독으로 인수할 경우 경쟁 반도체기업이 ARM의 설계를 활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사용료를 비싸게 받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선제적으로 인수 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5% 안팎의 ARM 지분을 인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교수는 "현재 반도체 칩을 만드는 경쟁사인 엔비디아가 인수 협상 중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다른 반도체 기업들도 ARM의 설계를 계속 활용해야 하는 만큼 일종의 ‘보험’으로 지분 투자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면서 "다만 ARM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려는 취지의 인수는 아닌 만큼 삼성은 최소 금액으로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 ARM 비즈니스 모델 어떻길래? 삼성과의 관계는?

1990년 영국에서 설립된 ARM은 반도체 기본 설계도를 만들어 삼성전자·퀄컴·애플 등 세계 반도체 기업에 사용료를 받고 파는 회사다.

그래픽=김란희
그래픽=김란희
애플·퀄컴·삼성전자·하이실리콘(화웨이)·미디어텍 등이 ARM 설계 기반으로 스마트폰 두뇌라 하는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만들고 있다. 최근 애플이 모바일 AP뿐 아니라 PC 칩에서도 인텔과의 관계를 끊고 ARM 설계를 기반으로 자체 칩을 개발한다고 나서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버(대형컴퓨터)용 시장에서도 아마존, 구글 등이 ARM 기반으로 직접 반도체를 개발 중이다.

ARM의 사업모델은 이처럼 ‘오픈형’ 라이선스다. 라이선스만 구입하면 어떤 기업이든 이를 커스터마이징해서 회사별로 자체 목적에 맞게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ARM 설계는 누구나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엔비디아가 단독으로 이를 인수하면 ARM이 정상적인 비즈니스를 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도 2030년 비메모리(시스템)반도체 1위를 목표로 ARM 설계 기반 모바일 AP(엑시노스) 등을 만들고 있어 이 회사와의 지속적인 파트너십이 불가피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 회장의 친분이 두터운 것도 지분 인수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다만, 손 회장이 2016년 인수 당시 지불한 ARM 몸값이 우리돈 38조원(320억달러)에 달했고, 현재 염두에 두고 있는 매각 목표가는 이보다도 높은 49조원(410억달러)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다른 기업과의 일부 지분 공동 투자가 현실적인 시나리오라는 분석이다. 이 방안 역시 모든 지분을 팔기 어렵고, 나머지 잔량은 IPO(기업공개)하는 방식이 유력할 것이라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 핵심 협력사에 투자 보폭 빨라지는 삼성, 이번에도?

ARM 지분 인수가 삼성전자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투자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건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반도체·스마트폰 등에서 협력 중인 주요 협력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면서 "ARM의 지분 인수는 규모만 커졌을 뿐, 소부장 투자의 연장선상"이라고 했다.

올해 1분기 분기보고서를 보면, 삼성전자는 에스에프에이(056190)(10.2%), 원익IPS(240810)(7.5%) 등 국내 주요 장비사뿐 아니라 갤럭시노트에 들어가는 ‘S펜’을 제조하는 일본 와콤(5.0%), 네덜란드 장비사 ASML(1.5%)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ASML은 더 작고 전력 효율이 좋은 칩을 생산하는 데 핵심 제품인 극자외선(EUV) 기술 기반의 장비를 공급하는 전 세계 유일한 회사다. 삼성전자는 ASML 장비를 활용해 전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회사인 대만 TSMC와 경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에스앤에스텍(101490)와이아이케이(232140)두 곳의 지분 일부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총 1000억원가량의 자금을 투입하기도 했다. 에스앤에스텍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과정에 쓰이는 포토마스크 원재료인 블랭크마스크를 만드는 업체다. 와이아이케이는 반도체 검사장비 제조업체로 메모리 반도체 검사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장비 제조에 필요한 원재료 등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 측은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2차전지 핵심소재 중 하나인 분리막을 제조·판매하는 업체인 일본 더블유스코프에 지분 투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측은 "ARM 인수 관련해서 어떤 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 ARM차이나 CEO 본사 해임조치에도 버티기… 지분매각 영향 주목

ARM 지분매각이 순탄하게 이뤄질지는 불확실하다. ARM차이나의 경영권 분쟁이 최근 불거지면서다. ARM은 지난 6월 ARM차이나 이사회를 통해 우슝앙(앨런 우) ARM차이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해임조치했다. 본사의 사업과 이해상충되는 펀드를 만들었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앨런 우는 버티기에 들어갔고, 심지어 직원 200여명이 서명한 성명을 지난 28일 내고 본사가 ARM차이나 고객사들에게 기존 거래나 계약을 종료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ARM차이나는 중국의 법률을 준수하고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한다며 중국 정부가 이번 갈등에 관심을 갖고 전략적 자산을 지킬수 있도록 개입해줄 것을 공개적으로 호소했다. 이에 대해 ARM 본사는 즉각 성명을 내고 앨런 우가 해임을 거부하며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직원들에게 공황을 조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7월 상하이에서 열린 제 2회 ARM 인공지능 개발자 글로벌 서밋 /ARM차이나 사이트
지난해 7월 상하이에서 열린 제 2회 ARM 인공지능 개발자 글로벌 서밋 /ARM차이나 사이트
ARM차이나 지분 51%는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 등이 참여한 허우안혁신펀드가 보유하고 있다. ARM의 모기업인 소프트뱅크가 자금조달을 위해 2018년 ARM의 중국 사업 지분을 7억 7520만달러에 매각한 데 따른 것이다.

앨런 우 대표는 사설 경호원을 동원해 ARM과 ARM차이나 이사회 멤버가 ARM차이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ARM차이나 경영권 분쟁은 중국 사업의 리스크를 재부각시키면서 ARM 본사의 지분 매각에 나쁜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ARM이 반도체 기본 설계도를 제공하는 IP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전체 매출의 27%가 중국에서 나온다.

ARM차이나는 선전 상하이 베이징 청두 등에 연구기지를 두고 있다. 화웨이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AP를 포함한 중국산 시스템반도체의 95%가 ARM의 설계도를 기반으로 만들었고, 화웨이 같은 중국 고객이 150곳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