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움켜쥐고 사타구니 만지고"...뉴질랜드 언론 보도 韓외교관 성추행 전말

이용성 기자
입력 2020.07.30 07:34 수정 2020.07.30 23:38
남성 직원의 엉덩이 움켜쥐는 등 세 차례 성추행 혐의
"나보다 힘센 백인 남성을 성추행할 수 있겠나" 반박
외교부, 2년 전 귀국한 A씨 자체 조사, 감봉 1개월 징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오후(한국 시각) 재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 통화에서 한국 외교관의 뉴질랜드 현지 성추행 의혹 사건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것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씨의 성추행 혐의에 대한 뉴스허브 보도 장면. /뉴스허브 방송 캡처
A씨의 성추행 혐의에 대한 뉴스허브 보도 장면. /뉴스허브 방송 캡처
통상 우방국 간에는 불미스러운 사안이 있더라도 실무선에서 사전 조율을 거쳐 정상 간 통화에서 직접 거론하지 않도록 하는 게 관례다. 외교가에서 "성범죄 사건이 외교 문제로 비화돼 정상 통화에서 언급된 것은 이례적"이란 말이 나오는 건 이때문이다.

앞서 뉴질랜드 매체 뉴스허브는 한국 고위 외교관이 2017년 말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할 때 대사관 남자 직원을 상대로 세 차례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지만, 아직 뉴질랜드 경찰의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25일 보도했다.

뉴스허브에 따르면 현재 동남아 국가에서 총영사로 근무 중인 A씨는 지난 2017년 말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 근무 시절 뉴질랜드 국적 직원의 엉덩이를 움켜쥐는 등 총 세 차례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은 A씨의 사무실에서 일어났다. 당시 A씨는 사무실에서 피해자에게 자신의 컴퓨터로 문제 해결을 부탁하고는 느닷없이 피해자의 왼쪽 엉덩이를 손으로 움켜잡은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사관 엘리베이터 밖에서 피해자의 사타구니 부위와 벨트 주변을 손으로 잡은 혐의도 받고 있다. 세 번째 사건이 몇 주 후에 발생했다. 이번에는 A씨가 피해자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A씨가 2018년 초 뉴질랜드를 떠났지만 현지에서 수사는 계속됐고, 뉴질랜드 웰링턴 지방법원은 지난 2월 A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후 한국 정부도 뉴질랜드에서 성추행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A씨를 조사하는 데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뉴스허브는 덧붙였다.

◇A씨 "난 동성애자도, 변태성욕자도 아니다"

하지만 A씨는 대사관 자체 조사 과정에서 자신에게 제기된 성범죄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뉴스허브는 25일 A씨가 대사관에 제출한 답변서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A씨는 답변서에서 자신이 피해자의 사타구니를 만졌다는 주장에 대해 농담을 하면서 한두 번 정도 그의 배 부위를 두드린적은 있다고 반박했다. 평소에 운동을 많이 한다고 주장하는 피해자의 배가 좀 나온 것 같아 가볍게 두드리며 농담을 했다는 것.

가슴을 움켜 쥐었다는 피해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두 손으로 가슴을 툭툭 친 것은 기억한다"며 움켜쥔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또다른 뉴질랜드 주요 매체인 스터프(Stuff)는 A씨가 신체 접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성추행 의도는 없었다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29일 보도했다. 스터프는 A씨가 관련 인터뷰에서"나는 동성애자도 성도착증 환자(변태성욕자)도 아니다"라며 "내가 어떻게 나보다 힘이 센 백인 남자를 성추행할 수 있겠느냐"며 혐의를 부인했다고 전했다.

강제추행의 경우 국내에서 형법 제298조에 따라 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이성 간이든동성 간이든 마찬가지다. 2013년 형법 개정으로 ‘부녀’로 한정했던 피해자를 ‘사람’으로 확대하면서 동성 간 강제추행도 성립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폭행 또는 협박이 아니더라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이 인정되면 성폭력 특례법 10조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한국 외교부는 2년 전 귀국한 A씨를 자체 조사해,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린 뒤 사건을 자체 종결했다.

청와대는 다만 이번 사건을 두고 두 정상 간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아던 총리가 A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까지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날 통화가 아던 총리의 요청으로 30분간 이뤄진 만큼 아던 총리가 유감을 표하며 사건 수사 협조를 요청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경우 뉴질랜드 측의 집요한 문제 제기에도 이번 의혹을 '개인 문제'로 치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다 '외교 망신'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뉴스허브는 이상진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가 자신들의 인터뷰 요청에 자료를 통해 A씨에게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 대사는 또 A씨가 언제 뉴질랜드로 들어와 조사를 받을 것이냐는 질문에 뉴질랜드로 들어와 조사를 받을 것인지 여부는 본인이 결정할 문제라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사이먼 브리지스 뉴질랜드 국민당 외교담당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외교적 상황은 복잡하지만, 저신다 아던 총리와 윈스턴 피터스 외교부 장관이 이 문제를 모른 체하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9일 기자들과 만나 전날 양 정상의 통화에서 아던 총리가 뉴질랜드 언론에 보도된 한국 외교관 성추행 의혹 사건을 언급했고, 문 대통령은 "관계 부처가 사실 관계를 확인한 뒤 처리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외교부는 인사제도팀과 감사관실, 국제법률국을 중심으로 뉴질랜드 정부의 조사 협조 요청 등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