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매출 600억 선박부품회사 거절하고 벤처투자사 창업한 선보공업 2세

정민하 기자
입력 2020.06.30 06:00
"중공업은 이미 7~8년 전에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기보다는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했죠."

26일 서울 강남구에서 만난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는 선박 부품 제조 중견기업 선보공업 창업주 최금식 회장의 첫째 아들이다. 그는 지난 2016년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는 대신 선보엔젤파트너스라는 벤처투자회사를 만들었다. 아버지가 회사에 들어와 선박부품업을 배우라고 했지만 수차례 실패 후 벤처투자가 살 길이라고 판단했다.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 /선보엔젤파트너스 제공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대표. /선보엔젤파트너스 제공
매출 640억 규모의 회사를 거부하고 벤처투자자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 대표는 "조선업에 수백억원을 투자했지만 정작 사업화 단계에서 전부 실패했다"며 "여러 차례 시행착오 끝에 기업 내부에서 신사업을 도모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최소한의 투자금으로 빠르고 효율적으로 사업화를 추진할 수 있는 벤처투자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아버지 최금식 회장을 설득, 자본금 20억원으로 미래에셋벤처투자 경력이 있는 오종훈 대표와 함께 2016년 선보엔젤을 설립했다. 그는 "아버지도 30여 년 전 300만원으로 선보공업을 창업한 만큼 처음엔 사회 환원 차원에서라도 청년 창업가들을 지원하길 원했다"면서 "그런데 선보엔젤의 투자가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선보엔젤에 50억원을 투자하셨다"고 했다.

선보엔젤은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신성장 동력이 절박한 중견기업들이 투자에 동참하면서 선보엔젤은 국내 최초 중견기업 연합 벤처투자 플랫폼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최 대표의 제안으로 15개 중견기업, 산업은행이 주주로 참여해 2017년 413억원 규모의 중견기업연합펀드를 만들었다.

그러나 CVC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아직 따갑다. 최근 정부가 대기업 지주회사에도 금산분리 완화를 통한 CVC 허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일부 정치권을 중심으로 ‘금산분리 원칙 위배’ ‘재벌 사금고화’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최 대표는 "CVC를 바라보는 정치권 시각이 너무 단편적"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자기 기업 중심의 좁은 시야에 갇혀 있던 지방 중견기업들이 CVC를 통해 글로벌 시대에 맞는 신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다"며 "사업화가 어려워 연구실에서 잠자고 있던 기술들도 이들의 지원에 힘입어 사업 활로를 찾아 ‘윈윈(win-win)’할 수 있다"고 했다.

최 대표는 70여 년 전통의 조광페인트를 대표 사례로 들었다. 조광페인트는 과포화 상태인 페인트 시장에서 비싼 백금 촉매를 대체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한 스타트업에 투자해 조인트벤처 ‘리포마’를 만들었다. 그는 "쉽게 신사업을 벌이지 못하는 보수적인 중견기업이 벤처 투자를 통해 미래 먹거리인 수소 연료전지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보엔젤이 투자한 회사는 50곳이 넘는다. 최 대표는 "일차적으로 스타트업이나 벤처 100개, 중견기업 100개의 파트너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며 "그렇게 되면 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이 종횡으로 협력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선보엔젤의 도움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기업도 있다. 리센스메디컬은 마취제 없이 냉각 국소 마취를 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김건호 유니스트 교수가 창업한 회사다. 기술의 수요처를 찾던 김 교수는 선보엔젤의 도움으로 미국 내 전문병원에서 리센스메디컬이 개발한 ‘안구 마취 기기’의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300억원에 달하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게 최 대표의 얘기다.

최영찬(왼쪽)·오종훈(오른쪽) 선보엔젤파트너스 공동대표. /정민하 기자
최영찬(왼쪽)·오종훈(오른쪽) 선보엔젤파트너스 공동대표. /정민하 기자
최 대표와 오 대표는 정부가 벤처 투자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한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우리나라 정부처럼 이렇게 많은 돈을 직접 투자 하는 곳은 없다"면서도 "그만큼 기업들이 정부 자금을 유치하려고 자신들에게 진짜 필요한 기술이 아니라 정부 기조에 맞는 기술만 개발해 효용성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이번엔 블록체인, 이번엔 AI’ 식으로 일방적으로 투자 방향을 정해버리면 벤처 시장은 일시적인 ‘붐’(유행)에 그치고 맙니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이 스스로 선택한 기업이 투자를 받아 자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최 대표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