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석 부회장 "애경까지 망한다" 급제동... 이스타 인수계획 바뀐 이유는

최지희 기자
입력 2020.06.29 06:00 수정 2020.06.29 10:33
제주항공(089590)의 이스타항공 인수 작업이 지난달 초 급작스럽게 교착 상태에 빠진 배경에 채형석 애경그룹 총괄부회장의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인수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지난 5월 들어 체불임금 등은 기존 이스타항공 경영진이나 최대주주가 해결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채 총괄부회장은 지난달 초 이스타항공 인수에 대해 우려하는 입장을 비교적 강하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하면 애경도 같이 위험해진다"는 취지의 발언이었다고 한다. 이후 제주항공은 이스타 측에 체불임금을 갚으라고 요구하면서 사실상 M&A를 중단시켰다.

애경그룹의 지난달 인사 또한 이 때문이라는 전언이 나오고 있다. 애경그룹은 지난달 12일 지주회사인 AK홀딩스 사령탑에 이석주 제주항공 사장을 깜짝 발탁했다. AK홀딩스(006840)전임 대표였던 안재석 대표는 이스타항공을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꾀해야 한다는 태도를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안 대표가 뜻을 굽히지 않아 대표이사 교체를 통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다.


애경 채형석 부회장. /조선DB
애경 채형석 부회장. /조선DB
29일 재계와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2일 애경그룹은 정규 인사 시즌이 아님에도 안재석 AK홀딩스 대표 자리에 이석주 제주항공 대표를 앉혔다. 안재석 전 대표는 처음부터 항공사 M&A가 필요하다고 본 인물이다. 아시아나항공(020560)인수전에도 적극적으로 임했고, 인수에 실패하자마자 다음 매물로 이스타항공을 선택했다.

제주항공 고위 관계자는 "이스타항공의 경우 당시 항공유를 국내 항공사 중 가장 비싸게 사 오는 등 비용 측면에서 우리가 줄일 수 있는 게 많다고 봤다"며 "안 전 대표를 비롯한 인수 긍정론자들은 인수 금액을 최대한 줄여 가져오면 제주항공과 시너지를 내 훨씬 이득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석주 대표는 인수 작업이 한창 진행될 때도 이스타항공 인수를 탐탁지 않아 했다는 것이 직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지난 3월 2월, 안 전 대표의 의지대로 제주항공은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은 국면인데도 이스타홀딩스와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SPA 체결 이후 애경 이사회는 위기감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애경 오너 일가와 이사회 사이에서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자칫 잘못하면 애경그룹 또한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이석재 대표가 빠진 제주항공 사장 자리에는 김이배 전 아시아나항공 전략본부장이 선임됐다. 김이배 대표는 1988년 아시아나항공에 입사한 ‘금호맨’으로, 전략과 재무 부문을 주로 거치며 금호그룹의 흥망성쇠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 중 한 명이다. 잘못된 M&A 한두 건이면 그룹이 무너질 수 있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경영자다.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이스타항공 여객기와 제주항공 여객기가 멈춰 서 있다.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이스타항공 여객기와 제주항공 여객기가 멈춰 서 있다. /연합뉴스
제주항공 측은 애경그룹 차원의 의사결정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M&A는 AK홀딩스가 아닌 제주항공이 주(主)가 돼 끌고 가고 있다"며 "김이배 대표는 6월 1일 자로 업무 보고를 받기 시작했고 이후에도 제주항공이 주체가 되어 인수 작업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5월 들어 돌연 체불 임금을 문제 삼아 인수가 중단된 데 대해서는 "(이스타 측 주장과 달리) 그 이전부터 문제를 제기해왔다"며 "임금 체불은 일반적인 채무가 아닌, 근로기준법상 경영진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고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불법 행위이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순 없다는 결론이 난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항공은 공식적으로 인수에 대한 의지가 변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SPA를 체결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인수 의지가 있다고 밝혀오지 않았느냐"며 "여전히 이것이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9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앞에서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앞에서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계약 만료를 앞둔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 간 협상은 여전히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주까지는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3월 이후 임금은 지급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 등을 보냈을 뿐 실질적인 협상은 전무했다. 내부에서도 "내용증명만 오간다는 건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는 얘기가 나왔다.

협상이 성사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여기는 이스타홀딩스는 이번주 초 제주항공에 인수 대금 545억원 중 순수 최대주주 몫인 110억원을 포기하겠다고 최종 제안했다. 그러나 제주항공은 아직까지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26일 이스타항공 주주총회에서도 양측 모두 이사 후보를 제안하지 않아 주총이 아무 성과 없이 끝났다.

AK홀딩스는 26일 제주항공 유상증자에 724억원 규모로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제주항공은 1585억원 규모로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추진 중이다. 제주항공은 1178억원은 채무 상환에 쓰고, 407억원을 운영자금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타법인 증권 취득자금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공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