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름해 안나가던 원룸들 자가격리 특수… "사진만 보고 계약했다 낭패도"

연지연 기자
입력 2020.06.04 06:00
최근 귀국한 미국 유학생 오승연(22)씨는 자가격리를 위해 빌려둔 원룸에 들어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우선 에어컨과 냉장고, 세탁기가 모두 있는 풀옵션이라더니 에어컨과 세탁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침대는 화장실 변기와 가벽 하나로 나뉘어져 있었다. 어차피 2주만 사용할 곳이라고 쉽게 생각해 온라인에서 사진만 보고 계약을 진행한 결과였다. 오씨는 "집으로 들어가면 가족과 이웃에게 민폐를 끼칠까봐 따로 비용을 들여 원룸을 구한 것인데, 막상 보니 눈물만 났다"고 했다.

일러스트=정다운
일러스트=정다운
작은 건물에 최대한 많은 방을 만드느라 엉망으로 시공된 원룸, 오래되고 관리 상태가 나빠 세입자를 찾기 어려웠던 원룸들이 때 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평소라면 다른 원룸에 밀려 무보증금에 저렴한 월세로도 세입자를 찾기 어려웠을 방들을 최근 해외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기계약이라 주로 온라인을 통해 거래가 이뤄진다는 점을 악용하는 집주인이 있다는 것. 물건의 상태를 명확하게 알고 계약하기 어려웠던 임대인들의 피해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이런 방에서 지내라고?…황당한 원룸들

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자가격리자를 위한 원룸을 찾는 사람은 부쩍 늘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월 말부터 해외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의 최소 2주간 자가격리를 의무화한 데 따른 것이다.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의 매물 정보가 공유되는 네이버 커뮤니티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코로나 19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던 2월부터 현재까지 자가격리를 위한 원룸 단기계약을 원하는 글은 약 200건 정도 올라왔다. 초기에는 자가격리자에게는 방을 내줄 수 없다는 글들이 많았지만, 3월 말을 기점으로 자가격리자를 위한 원룸이라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중 일부 원룸 주인들이 열악한 상태를 숨기고 눈속임으로 계약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입국하는 이들은 통상 온라인상으로만 원룸 상태를 확인하고 계약을 맺는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다. 광각렌즈로 촬영해 작은 방은 크게 보이도록 홍보하는 경우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화장실과 침실이 얇은 가벽으로만 구분된 경우, 광고는 복층 원룸이라고 해놓고서 그냥 원룸에 계단 흉내만 낸 경우 등 눈속임이 다양하다.

장기 여행을 하다 돌아온 사모(36)씨는 "가격이 저렴하니 2주만 참으면 되겠다는 생각에 대충 입주했지만, 하수구 냄새가 심하게 나는 등 시설이 생각보다 많이 열악했다"면서 "자가격리를 하다가 더 큰 병에 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서울 신림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시설이 나빠 공실이 오래될 수 있는 방들이 최근 하나 둘씩 나가기 시작했다"면서 "통상 단기임대 하는 방에 자가격리자가 들어오면 방역 등 추가 관리비가 들기 때문에 집주인들이 싫어하는데 ‘자가격리자 환영’ 같은 문구를 붙인 원룸도 늘고 있다"고 했다.

◇제대로 방역은 되나 의심…한번 계약하면 환불도 쉽지 않아

또다른 문제는 자가격리자들이 단기임대를 해서 쓰는 원룸에 대한 방역이 철저하게 이뤄지는 지도 의문이라는 점이다. 최근 소독업계는 코로나 19 특수를 보고 있다. 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원룸에서 소독을 신청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한 소독업체 관계자는 "법인이 운영하는 경우 방역 후 발급해주는 소독증명서 등을 챙기기 위해 주기적으로 소독을 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원룸의 경우는 신청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소독 비용은 원룸 기준으로 한 달에 두 번 하는 데 10만원 정도다.

원룸 단기임대를 주로 취급하는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시설이 낙후된 원룸 주인들이 무보증으로 20만~30만원 월세를 받는 중에 비용까지 써가면서 방역을 할 것 같진 않다"면서 "하루 정도 환기는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감염 위험이 크기 때문에 요즘 자가격리자를 위한 단기임대를 중개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통상 이런 원룸의 단기임대는 월세를 일시금으로 받기 때문에 방에 입실한 후, 생각과 다르다고 환불을 받기도 쉽지 않다. 미국에서 최근 귀국한 유학생 김모(26)씨는 "침구도 축축하고 원룸시설도 맘에 들지 않아 월세를 환불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원룸 주인과 연락도 잘 되지 않은 채로 흐지부지 2주가 흘렀다"면서 "돈을 되돌려받는 것도 포기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