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물 시청만 해도 유죄?… 처벌기준 강화된 'n번방 방지법' 오해와 진실

이은영 기자
입력 2020.05.20 17:17 수정 2020.05.20 18:13
성범죄 처벌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n번방 방지법’ 시행을 두고 개인의 성적(性的)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과잉처벌’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처벌 대상을 단순 시청까지 포함하면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n번방처럼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성 착취 영상이나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인 만큼 우려처럼 개인의 사생활을 검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일러스트=정다운
일러스트=정다운
정부는 지난 19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공포했다.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이다.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18개 조항이 개정·신설됐다. 의제강간이나 추행죄 공소시효 폐지 등 일부를 제외하고 개정된 법률은 공포 즉시 시행됐다.

이 가운데 디지털 성범죄 처벌 내용이 담긴 성폭력처벌법 14조가 논란이 되고 있다. 성폭력 처벌법 제14조 4항은 성인 대상 불법 성적 촬영물을 소지, 구입, 저장, 시청할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기존 법령은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소지하는 경우만 처벌대상이 됐다.

특히 ‘시청’도 처벌 대상에 포함되면서 해외 음란물을 온라인으로 재생하거나 저장하기만 해도 처벌받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같은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김영미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은 "적법한 국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유통됐던 해외 음란물 관련 처벌은 성폭력범죄 처벌법이 아닌 기존의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것"이라며 "이번에 개정된 성폭력범죄 처벌법에서 처벌 대상으로 하고 있는 영상물은 아동·청소년 및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 착취물과 불법 성적 촬영물"이라고 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불법 성적 촬영물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대상자의 동의없이 찍은 영상과 사진 등을 이른다. 촬영 당시에는 의사에 반하지 않았어도 사후에 촬영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반포했다면 이에 포함된다.

즉, 촬영 대상자의 허락 없이 찍거나 퍼뜨린 촬영물만 불법 성적 촬영물로 간주돼 시청 행위만으로도 처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사자의 동의를 받고 적법한 절차 아래 제작·유통된 성적 촬영물은 시청하거나 소지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신상정보가 공개된 텔레그램 ‘박사방’과 ‘n번방’ 운영자들. 왼쪽부터 ‘박사’ 조주빈(25)과 ‘부따’ 강훈(18), ‘이기야' 이원호(19), ‘갓갓’ 문형욱(25)이다. /연합뉴스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신상정보가 공개된 텔레그램 ‘박사방’과 ‘n번방’ 운영자들. 왼쪽부터 ‘박사’ 조주빈(25)과 ‘부따’ 강훈(18), ‘이기야' 이원호(19), ‘갓갓’ 문형욱(25)이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불법 성적 촬영물이나 성 착취물의 단순 시청 행위를 어떻게 단속하고 처벌할 수 있을지 현실성을 두고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적극적인 범행 적발을 위해선 수사기관이 웹사이트나 온라인 메신저 대화방에 업로드된 촬영물의 시청 기록을 모니터링 해야 하는데, 사이버 검열 논란과 과실범 과잉 처벌 논란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찰은 처벌 규정이 생겼다고 민간에 대한 대대적 모니터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다른 형사 사건과 똑같이 신고·고발이 접수되거나 수사 과정에서 불법 영상물 시청 사실을 경찰이 인지했을 때만 수사가 진행되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여전히 불법 성적 촬영물을 일반인이 어떻게 판별하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많다. 쉽게 말해 전문배우들이 합의하에 촬영한 영상인줄 알고 시청을 했다가 불법 영상임이 확인될 경우 처벌대상이 되느냐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대변인은 "형법상 고의로 불법 영상물을 시청한 경우에만 처벌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실수로 시청을 한 경우에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당사자와 수사기관의 책임"이라며 다소 모호한 답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