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우려에 "이러다 집 넘어가" 경고… 전문가들 "원금 상환 유예 등 금융 대책 필요"

허지윤 기자
입력 2020.03.28 10:00
우한 코로나 감염증(코로나 19) 발(發) 경기 침체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주택 시장의 충격 완화를 위해 원금상환을 유예하는 등 금융 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불황으로 무너지는 가계가 속출할 것에 대비해 당분간 이자만 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과거에 심각한 경기불황이 닥칠 때마다 가계 및 기업이 파산하고 부동산이 대거 경매로 내몰리는 일이 발생했다. 이번에도 세계 경제위기가 현실화할 경우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파산과 경매가 급증할 우려가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복도. 빚을 감당하지 못해 회생·파산 절차를 밟는 개인, 법인 관계자들로 북적인다.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복도. 빚을 감당하지 못해 회생·파산 절차를 밟는 개인, 법인 관계자들로 북적인다. /김연정 객원기자
◇ "경제위기 때마다 경매 물건 급증"

28일 본지가 법원 경매정보와 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을 통해 경매 추이를 분석한 결과, 과거 국내·외 경제위기가 왔을 때마다 경매 물건은 급증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전후로 담보물건 압류 및 경매 물건이 크게 늘었다.

2007~2008년 세계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경매 물건은 총 29만1143건으로, 2008년 (26만6925건) 대비 9% 가량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13만4794건)와 비교하면 116% 가량 많은 수치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경매는 크게 늘었다. 2004년 법원행정처가 발간한 사법연감을 살펴보면 채권자가 확정판결에 근거해 경매를 요구하는 강제경매와 근저당권에 근거한 임의경매 등을 포함한 민사집행사건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당시 58만여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 법원 경매통계시스템 상에서는 2000년 이전 경매 데이터는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는다.

경기 불황이 시작되면 실업자가 증가하고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는다. 신용이 경색돼 대출 한도가 줄고 대출 상환 독촉이 늘면서 결국 개인파산이 증가한다. 기업 및 가계 경매 물건이 증가하는 이유다.

지지옥션은 올해 부동산 경매 건수가 2015년 이후 5년 만에 15만건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코로나 변수를 고려하지도 않은 예상치다. 장근석 지지옥션 기획팀장은 "자영업 매출 감소와 주택 구매 심리 감소 등으로 상가 경매와 아파트 등 주거시설 경매가 늘 것으로 예상한 와중에 코로나 사태까지 터진 것"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법원이 휴정되기 까지 했으나 경매 증가세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원리금 동시상환 부담 완화 등 간접 지원 대책 필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원리금 동시상환 부담’이 가계의 위기와 경매 급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때문에 대출금 상환에서 오는 위험을 사전에 막을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무급휴가 조치를 내리는 기업들이 잇달아 나오는 상황에서 경제 위기가 점점 현실화하면 대출 원리금 상환에 대한 가계의 부담이 상당히 커질 것"이라면서 "원리금 분할상환을 임시로라도 완화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이달 11일 발표한 2020년 2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은행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901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대비 9조3000억원 늘어나 900조원을 돌파한 것이다. 2004년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증가폭이 가장 컸다.  /조선일보DB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이달 11일 발표한 2020년 2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은행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901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대비 9조3000억원 늘어나 900조원을 돌파한 것이다. 2004년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증가폭이 가장 컸다. /조선일보DB
현재 주택담보대출 상당수는 원리금상환 원칙에 따라 매달 원금과 이자를 모두 내야한다. 가령 주택구입을 위해 1억원을 10년 만기로 빌리면 주택구입 자금인 경우 원금과 이자(고정금리3% 가정)를 합쳐 매달 약 96만5000원씩 갚아 나가는 식이다. 이를 완화해, 당분간 월 이자 25만원만 상환하고 추후 원금을 갚을 수 있도록 해 가계 부담을 다소 덜어줘야 한다는 논리다.

금융업계에서는 ‘3개월 연체 시점부터 경매로 넘어갈 위험성이 커진 것’이라고 본다. 현재 은행들의 대출 건전성 분류 기준은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구분된다. 3개월 연체부터 신용상태가 악화돼 상당한 위험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되는 고정 이하 여신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에서 3개월 연체됐다고 해서 바로 경매로 넘기지는 않고 가급적 상환 기회를 주려고 하나 통상 약 6개월동안 연체되면 경매로 넘어가게 된다"고 했다. 법원 경매 회부 절차 등을 감안하면 실제 법원에 해당 경매 물건이 나오는 시점은 8개월~12개월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경매가 느는데 부동산 시장 사정이 나쁘면 은행 입장에서도 대출금을 모두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금융권 손실이 커질 위험도 내포하고 있는 것. '주택담보대출 연체→대출담보(주택) 가격 하락→금융기관 부실화'의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도 "경제위기에 따른 소득 감소가 실물경제의 가장 큰 충격파"라면서 "위기 상황인 만큼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의견을 냈다.

다만, 매달 원금과 이자를 모두 상환토록 하는 현행 원금분할상환 원칙은 현 정부가 가계부채 감소 목표를 위해 유지하고 있는 주요 대출정책 기조라는 점에서 정부 차원에서 노선 변경을 하지 않는 한 현 금융시스템 상에서는 쉽지 않다는 예상도 나온다.

박 위원은 "은행권 안에서 원금분할상환을 임의적으로 풀어주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정부가 회생 및 상환 기회를 확대하거나 경매 회부를 유예하는 등의 제도 도입 등도 추가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고 해서 시중 은행의 대출금리에 바로 반영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