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공무원' 많은 세종시… 6년간 음주운전 103건 적발

세종=이민아 기자
입력 2020.03.29 07:00
[흔들리는 경제관료]
고참 공무원, 대부분 배우자·자녀와 떨어져 원룸 생활
국토부·기재부·산업부 등 연간 17차례 음주운전 걸려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한 경제부처 과장급 공무원의 자녀와 아내는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고 있다. 이 공무원은 주말이나 서울 근무 일정이 있는 날에만 가족이 있는 서울 집에서 잔다. 세종에는 작은 원룸을 마련해 평일에 머문다. 세종에서 업무를 일찍 마치는 날이면 동료 공무원들과 술 한잔을 기울이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주변에도 배우자와 자녀는 서울에 둔 채 혼자 세종에 숙소를 잡아 지내는 ‘기러기 공무원’이 많기 때문에 술 친구는 언제든, 어디에든 있다.

밤마다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간부급 공무원 뿐만이 아니다. 공무원들의 저녁을 채우는 것은 대부분 동료 공무원과의 만남이다. 한 경제부처의 사무관은 세종에서 근무를 시작한 이후 몸무게가 약 20㎏ 늘었다. 잦은 야근과 술 자리로 퇴근 후 개인 시간을 갖기 어려워진 영향이다. 젊은 사무관들이 세종에 숙소를 구해 지내고 있다는 것을 상사들도 알고 있으므로,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한다’는 등 저녁 술자리를 거부할 핑계가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정부부처가 세종으로 이전한 후 공직 사회에서 음주 문화는 더욱 자연스러워 졌다. 업무가 많지 않은 기간에는 공무원들끼리 퇴근 후 삼삼오오 모여 술자리를 갖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다. 서울에서 멀어지면서 민간 기업에 다니는 친구와 교류할 기회가 현저히 줄고, 공무원끼리 지내는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립감에 술을 자주 찾다보니 음주운전 등 술로 인한 사건사고도 꾸준하게 발생하고 있다.

가족사진을 보고 있는 ‘기러기 아빠’./조선DB
가족사진을 보고 있는 ‘기러기 아빠’./조선DB
◇‘걸리면 끝장’인데… 공무원 음주운전 꾸준히 적발

조선비즈가 세종특별자치시지방경찰청에 정보공개를 요청해 2014~2019년까지 도로교통법 상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공무원 범죄자 소속기관별 현황’ 자료를 입수한 결과 이 기간에 세종시에서 공무원들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례는 총 103건이었다.

음주운전은 공직 생활에 치명타를 주는 범죄다. 일정 기간 승진이 제한되거나 정직·감봉 또는 파면 처분을 받게 된다. 하지만 최근 6년간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음주운전 범죄자로 적발된 건수는 한 해 평균 17건이었다. 세종은 서울 등 대도시 도심 지역에 비해 음주운전 단속이 잦지 않은 편임을 감안하면, 이보다 실제 음주운전 건수는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건수가 많은 부처는 국토교통부(13건), 기획재정부(9건), 산업통상자원부(7건), 문화체육관광부(7건), 고용노동부(옛 노동부·6건) 순이었다. 중앙정부부처 외에도 세종특별자치시청(17건)과 세종시교육청(12건)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건수가 많았다.

공무원의 음주운전 건수는 ▲2014년 7건 ▲2015년 17건 ▲2016년에 28건 ▲2017년 21건 ▲2018년 19건 ▲2019년 10건 이었다. 이 기간 데이터를 분기별로 분류하면, 술자리가 잦은 12월 연말이 포함된 4분기 음주운전 건수가 29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3분기에 26건, 1분기와 2분기에 각각 24건이었다.

 자료=세종지방경찰청,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자료=세종지방경찰청,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세종시는 ‘기러기 공무원’ 양성소"

정부부처가 서울이나 경기도 과천에 있을 때 공직 생활을 시작한 공무원들의 경우 세종에 ‘숙소’를 마련한 경우가 많다. 2012년 이전에 공무원이 된 과장급 이상 간부들이 주를 이룬다. 배우자와 자녀는 대부분 교육 문제로 서울에서 그대로 살고, 공무원 혼자 원룸에서 머무르는 식이다. 숙소 월세는 대개 40만~60만원이다. 일이 많아 야근해야 하거나 저녁 약속이 있을 때 머무른다. 숙소는 대부분 매트리스와 이불 하나 놓고 ‘잠만 자는’ 공간으로 쓴다.

공무원들은 배우자가 서울에 직장이 있고, 입시 준비를 하는 자녀가 있는 경우 가족 모두가 세종시로 이사를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한 공무원은 "세종시가 ‘기러기 아빠 양성소’라는 우스갯 소리가 나온다"면서 "아무도 없는 세종시에서 혼자 밤을 보내면 술이 더 생각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세종시에 각종 경제 부처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시점은 2012년이다. 세종특별자치시청과 세종교육청이 2012년 7월에 설립됐고, 같은해 국토교통부(당시 국토해양부)와 농림축산식품부(당시 농림수산식품부),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가 2012년에 1차로 정부세종청사에 입주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 해 뒤인 2013년에 세종시로 내려왔다.

2년 후면 주요 부처가 세종으로 이전한지 10주년이 되지만, 세종 생활을 하며 공무원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 멀어졌다는 박탈감과 외로움은 공무원들이 술을 찾는 원인들로 지목된다.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시장과 교류 못 한채 정책 만들어야 해 탁상행정 우려

문제는 세종시 공무원들의 잦은 술자리가 고립감의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공무원들끼리의 술자리가 잦아질 수록 사회와는 멀어지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종시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땅거북이처럼 공무원 조직이 사회 진화에 동떨어진 집단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자조섞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한 경제부처 국장급 관료는 "과거 과천에 근무했을 때는 민간 기업이나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만나 시장 동향 등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세종으로 이전한 이후에는 그럴 기회가 눈에 띄게 줄었다"면서 "공무원들끼리의 술자리가 잦아지기는 했는데, 외부 인사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라고 했다.

다른 경제부처 과장급 관료는 "간혹 민간에서 활동하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공무원 말고 다른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있다"면서 "사회 변화에 뒤쳐지고 있는 것 같다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전했다.

지리적 거리 탓에 최근 국민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신산업은 이용해 볼 기회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세종시에는 승차 공유 서비스 ‘타다’가 운행하지 않으며, 공유 킥보드 등 각종 모빌리티 업체가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신산업 이용의 편리함을 체감하지 못한 채 신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공무원들의 현실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장(시장)과 유리돼 관료들의 정책 역량이 떨어진다면 결과적으로 탁상행정이 이루어지는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새로운 서비스를 이용해 본 적이 없다보니 정책 집행과 기획 과정에서 헛발질을 해 일부 국민의 공분을 사기도 한다. 국토부가 지난 17일 홈페이지 첫 화면에 ‘타다가 더 많아지고 더 다양해집니다’라는 문구를 게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국토부가 주도적으로 지원한 여객운수자동차사업법 개정안이 지난 6일 국회를 통과하자 타다는 사업을 접겠다고 했다.

타다의 위법성 여부는 별개로 하더라도 정부의 법 개정으로 서비스를 중단하는 스타트업의 이름을 정책 홍보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배려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국토부가 이제 조롱을 한다"고도 했다. 타다의 현행 운영 방식이 현행법령을 편법으로 이용해 콜택시와 비슷한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국토부의 소통 방식은 대다수 국민를 설득하지 못 한 것이다.

한 홍보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국토부가 일으킨 ‘더 많은 타다’ 소동은 공무원들이 자기들끼리의 논리에만 사로잡혀 사회적 공감능력을 상실한 집단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홈페이지 캡처
국토부 홈페이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