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마켓컬리 뒤쫓다 숨찬 유통 공룡들 몸집 줄인다

김은영 기자
입력 2020.02.16 08:00
롯데 200개 점포 폐점, 이마트 비효율 매장 정리
온라인발 유통 혁신 시작... 사업부 간 칸막이 허물고 융합 경영

국내 최대 유통기업인 롯데쇼핑이 오프라인 매장 200개를 줄이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한다./롯데백화점
국내 최대 유통기업인 롯데쇼핑이 오프라인 매장 200개를 줄이는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한다./롯데백화점
지난 4일(현지시각) 162년의 역사를 지닌 미국 대형 백화점 체인 메이시스는 앞으로 3년간 125개 점포의 문을 닫는다고 밝혔다. 전체 매장(870여 개)의 20%에 달하는 수치다. 이 회사는 앞서 2016년에도 100여 개 매장을 폐점한 바 있다. 126년 전통의 중저가 백화점 체인 시어스는 2017년 381개의 매장을 줄이다가 이듬해 파산했고, 70년 역사를 지닌 완구 체인점 토이러저스도 파산을 택했다.

미국에선 2017년에만 8053개의 오프라인 점포가 문을 닫았고, 2018년 9302개, 지난해 9300개 이상의 소매점이 폐업했다. 유례없는 경제 호황에도 미국 소매점의 줄폐업이 이어진 이유는 온라인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실적이 악화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미국 소매업의 종말’이라며 오프라인 시대의 종말을 예견했다.

국내에서도 오프라인 유통점의 구조조정이 본격화 됐다. 지난해 말 이마트가 ‘삐에로쇼핑’ 등 비효율 점포를 폐점한다고 밝힌 데 이어, 지난 13일 롯데쇼핑은 오프라인 점포 700개 중 200개를 줄인다고 발표했다. 국내 최대 유통기업인 롯데와 이마트가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서자 업계는 "한국도 소매업의 대전환이 시작됐다"고 평했다.

◇ 롯데 200개 점포 폐점… 소매업 대전환 본격화

오프라인 유통 공룡들이 몰락한 이유는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된 새로운 소비 트렌드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온라인 사세를 확대하는 동안, 유통업체들은 여전히 쇼핑몰과 주차장을 짓고 고객들을 유치해 평당 매출과 이익을 얻는 데 급급했다.

이들은 쿠팡이 막대한 해외 자본을 유치해 할인 판매와 당일 배송 등으로 온라인 세력을 넓힐 때도 "적자투성이 쿠팡이 곧 망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고, 마켓컬리가 신선식품 배송 시장을 열었을 때도 안이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온라인이 소비시장의 새 질서가 되자, 뒤늦게 그들을 쫓는 형국이 됐다.

로켓배송을 앞세운 쿠팡은 지난해 거래액 12조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조선DB
로켓배송을 앞세운 쿠팡은 지난해 거래액 12조원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조선DB
유통업체들은 2010년 수익성의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2011년 1조7000억원이던 롯데쇼핑의 영업이익은 작년 4279억원으로 급감했다. 매출(17조6328억원)도 2015년(29조1277억원)과 비교해 10조원 이상 줄었다. 국내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67.4% 감소한 1507억원을 기록했다. 사상 최고였던 2013년 7350억원의 5분의 1토막 수준이다.

반면, 이커머스 업체인 쿠팡은 지난해 12조원의 거래액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쿠팡은 2018년 거래액 9조원, 매출은 65% 성장한 4조4000억원을 거둔 바 있다. 마켓컬리는 지난해 매출이 4000억원대로 창업 5년 만에 80배가 뛰었다. 국내 유통 시장에서 온라인 매출 비중은 2015년 30%에서 지난해 41%로 증가했고, 올해는 오프라인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체면치레를 하느라 대응이 늦어졌다"고 고백했다. 그는 "수 십 년간 유통시장을 이끌어 왔는데, 이를 부정하고 스타트업을 좇는 게 자존심 상했다"며 "변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먼 미래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사업부 간 칸막이 허물고 융합 경영 시작

전통적인 유통 강자들이 몰락하는 사이 아마존과 쿠팡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각종 IT기술을 활용해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공간을 넘어 소비자들의 삶을 지배하기 위해서다. 아마존의 경우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식품, 의류, 물류, 헬스케어, 콘텐츠 무료 스트리밍 등 전 산업의 ‘아마존화’를 추진한다.

오프라인에서는 하기 어려운 개인화 추천도 이들의 강점이다. 아마존은 고객이 사기 전에 배송하는 ‘예측 배송’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예컨대 고객이 3일간 고가의 시계를 들여다본다면, 아마존은 고객의 과거 구매내역을 보고 시계를 살만한 사람인지를 분석해 시계를 드론에 태워 고객에게 보낸다. ‘원치 않으면 반품하세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런 서비스가 가능한 이유는 고객 데이터에 대한 정보를 잘 구축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자율주행 로봇./아마존
아마존의 자율주행 로봇./아마존
쿠팡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물류센터를 짓고 90% 이상의 직매입 상품 구조를 갖춘 이유도 시장을 선점하고 다양한 분야의 신사업을 확장하기 위해서다. 로켓배송과 정기배송으로 온라인 시장을 선점한 쿠팡은, 최근 새벽배송 서비스 '로켓프레시', 음식배달 서비스 '쿠팡이츠' 등의 신사업 확장해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롯데쇼핑이 각 사업부로 나누어졌던 칸막이를 허물고 융합 운영을 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사업구조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롯데쇼핑은 기존 사업부제를 1인 최고경영자(CEO) 체제하의 통합법인(HQ)으로 두고, 오프라인 매장을 축소한다. 또 총 100만 평의 공간과 흩어진 고객 데이터를 통합해 업태의 경계를 넘나드는 매장 개편을 추진할 예정이다.

예를 들어 백화점의 식품 매장을 신선식품 경쟁력을 갖춘 슈퍼가 관리하고, 마트의 패션 판매 공간을 백화점 패션 바이어가 주도하는 식이다. 또 각 사업부가 따로 관리해온 3900만 고객 데이터를 통합해 온·오프라인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롯데쇼핑은 "기존의 유통 회사에서 라이프스타일 서비스 기업으로 탈바꿈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소매업 정체성이 바뀌었다… "새로운 유통 방정식 찾아야"

소매업의 몰락은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을 의미한다. 미국 대형마트의 대표 주자인 월마트는 한때 아마존의 공세에 밀려 고전했지만, 온·오프라인 서비스를 결합하고 식품 가격을 낮춰 반등에 성공했다. 아마존은 식품 배달 서비스 ‘아마존 프레시’를 선보이고 오프라인 식료품 업체 홀푸드를 인수했지만, 아직 월마트의 식품 경쟁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타깃도 식료품 배달 스타트업인 ‘쉽트’를 인수한 후 온라인 판매율이 30% 증가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매업의 정체성이 바뀌고 있다. 인구 구조와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등이 변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 냉장고를 채우던 소비자가 사라졌다. 이는 기존의 경영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면서 "신세계, 현대 등 대형 유통사는 물론 의류, 신발, 가전제품 등 소매점까지 도미노 폐점이 이어질 것이다. 앞으로는 새로운 생존 방정식을 찾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