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작년 서울 그린벨트 땅 거래액 역대 최대… "묻지마 투자 주의보"

허지윤 기자
입력 2020.02.14 10:56 수정 2020.02.14 11:47
작년 9월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산 17만7435㎡(5만3674평)이 250억원에 거래됐다. 서울 강남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불리는 헌인마을 바로 옆에 위치한 높지 않은 산이다. 그린벨트로 묶인 이 산을 사들인 큰 손은 우람개발주식회사다. 최근 몇 년간 서울 지역 내 그린벨트 땅에서 이렇게 큰 필지가 거래된 건 드문 일이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그린벨트 토지 거래액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집값이 크게 오르는데 서울에 집을 지을 땅이 없어 공급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반복되자 그린벨트가 해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투자자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 /조선DB
서울 서초구 내곡동 헌인마을. /조선DB
◇꿈틀거리는 서울 그린벨트 땅… 작년 총 거래액 역대 최고

14일 본지가 토지건물 정보 플랫폼 밸류맵에 의뢰해 2006년~2019년 서울 토지 실거래가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9년 서울 지역 내 그린벨트 토지 총거래액은 전년(1887억6935만원)보다 29.6% 늘어난 2446억5843만원으로 집계됐다. 역대 최고치다.

과거 서울 지역 내 그린벨트 토지 총 거래액 변동 추이를 보면 2009년 크게 늘었고 이후 매년 감소하다 2013년부터 다시 증가세를 보인다. 2006년 978억원이었던 서울 그린벨트 거래액은 2007년 640억원으로 줄었지만 2009년 1849억원으로 크게 치솟았다. 이후 2012년 489억원까지 줄어든 그린벨트 거래액은 조금씩 느는 모습을 보이다 지난해 최고치를 찍었다.

작년 그린벨트 토지 거래 현황을 보면 일반거래 총거래액(2129억여원)이 전년(1489억여원)보다 41.9% 증가한 것이 눈에 띈다. 반면 땅을 잘게 쪼개 매매하는 지분거래 총거래액은 317억여원으로, 전년(398억여원)보다 20.3% 감소했다. 지분거래가 아닌 일반거래액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을 볼 때 오랫동안 거래되지 않았던 땅들이 대거 거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봉구 도봉동엔 수상한 거래가 속출하기도 했다. 작년 한해에만 서울 도봉구 일대 그린벨트로 묶여있는 산 등이 무려 351건 거래됐다. 대부분 지분거래였다. 정부의 광역교통망(GTX) 확충과 같은 개발 사업과 장기미집행 공원부지 지정 해제를 미끼로 한 기획부동산에 의한 ‘묻지마 투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도봉구 도봉동에 이어 그린벨트 지역 땅의 지분거래가 많이 일어난 곳은 송파구 마천동(103건), 구로구 항동(51건), 구로구 궁동(47건), 송파구 오금동(32건) 등이었다. 일반거래가 가장 많이 일어난 지역 1·2위는 강서구 오곡동(30건)과 서초구 내곡동(19건)이었다. 그 뒤로 강서구 개화동(11건), 강동구 암사동(9건), 강동구 상일동(9건) 등이 있다.

올해도 서울 그린벨트 땅 거래가 잇따르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 공개시스템을 살펴보면 지난달 서울 도봉구 도봉동 산이 지번인 그린벨트 땅 6건이 면적에 따라 645만원에서 6000만원까지 다양한 가격에 거래됐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그린벨트 땅도 1월에만 면적에 따라 최저 244만원에서 최고 10억3400만원에 3건의 거래가 발생했다.

◇ 서울 그린벨트 해제 화두에 막연한 기대감 커져…기획부동산도 활개

개발이 제한되는 땅에까지 투자가 유입되는 것은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2008년까지 600억원대이던 거래액이 2009년 1849억원으로 급증했는데, 이명박정부 당시 보금자리주택 30만호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 땅 일부를 해제했고 이후 그린벨트 추가 해제에 대한 기대심리가 커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서울 그린벨트 땅이 화두로 재부상하고 있는 점이 당시와 비슷하다. 3기신도시 계획 등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주택 수요와 집값 상승에 따른 문제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면서 ‘서울 지역 내 그린벨트 일부를 해제해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와 부동산 시장에서 나오고 있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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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서울시가 ‘그린벨트 실태조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서울시가 집값 상승세를 막기 위해 그린벨트 일부 해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서울시는 ‘순전한 실태조사’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이런 담론을 악용한 기획부동산도 활개 치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들은 과거 정부 시절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을 공급한 사례를 거론하며 투자를 부추기고, 개발 가능성이 전혀 없는 필지까지 잘게 쪼개 매각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린벨트 투자를 두고 경고음을 내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이 희박한 데다, 해제가 된다고 해도 큰 차익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그린벨트 해제의 전제 조건은 공공성을 목적으로 한 건축 행위에 있기 때문에 개인의 개발을 위한 그린벨트 해제는 불가능하다"면서 "그린벨트가 해제돼 보상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공시지가 수준에서 시세를 일부 반영해 보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투자한 금액만큼을 보상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은 "막연한 기대심리로 그린벨트 해제를 노리고 투자가 몰리는 현상은 우려스럽다"면서 "특히 기획부동산에 의한 그린벨트 땅 지분거래의 경우 매수자가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거래한 뒤 뒤늦게 피해를 보는 일이 많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