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조합장의 세계] ③조합장 바꾸니 1년반만에 철거 완료… "평당 1억을 만든건 리더십"

이진혁 기자
입력 2020.02.07 06:00 수정 2020.02.07 07:59
지금은 3.3㎡당 1억원에 이르는 ‘성공신화’로 꼽히지만, 몇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의 성공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아파트는 ‘신반포1차’를 재건축한 단지로 2016년 8월 입주했다. 오세훈 전 시장이 물러나고 박원순 시장이 취임했을 때다.

오 전 시장 재임 당시 신반포1차는 25%를 기부채납 하는 조건으로 50층 이상의 아파트를 만들려고 했다. 당시 조합의 요구안은 무려 62층이었다. 하지만 박 시장이 취임하고 나서 서울시는 35층 이하를 요구했다.

그렇다고 사업을 중도에 접을 수도 없었다. 당시 한형기 조합장은 서울시청 앞에서 삭발하고 시위에 나섰다. 한씨는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는 부당한 조치라고 생각했다"면서 "죽기 살기로 싸웠다"고 말했다. 결국 한 조합장은 협상을 통해 커뮤니티센터를 개방하는 조건으로 단지가 서울시의 특별건축구역 1호로 지정되도록 했다. 아파트는 최고 38층까지 층수를 올릴 수 있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1차를 재건축한 아크로리버파크. /조선일보DB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1차를 재건축한 아크로리버파크. /조선일보DB
◇조합장 리더십이 재건축 좌우

7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부동산경기가 살아나면서 서울 강남권에서 재건축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조합장들이 정비업계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이 주도한 새 아파트의 평면이나 커뮤니티시설, 조경 등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수준에 올랐고, 집값은 부동산 호황과 맞물려 일반분양가의 2배를 가뿐히 넘어섰다. 재건축을 진행 중인 조합에는 ‘희망의 아이콘’이, 주택 수요자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물론 그동안 부동산경기가 좋았던 데다 정부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사업이 마무리됐다는 점에서 지금 재건축사업을 추진하는 곳보다 원활하게 사업할 환경이었던 측면도 있다. 하지만 사업을 진두지휘한 조합장의 역량이 없었다면 여전히 사업은 지지부진했을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신반포1차의 경우 재건축개발부담금 제도 시행 전인 2006년 9월 관리처분계획을 신청했지만, 2010년 4월까지 서초구청과 관리처분인가 반려취소 소송을 겪으며 4년이란 시간을 날렸다. 이후 조합 승소 판결이 나고서도 서울시 도시계획심의와 건축심의가 지연되며 2년이란 시간이 추가로 흘렀다.

이런 지루한 과정을 매듭 지은 데에는 한 조합장의 역할이 컸다는 게 조합원들의 얘기다. 한 조합장은 2011년 6월 신반포1차 조합장에 당선돼 약 1년 반만에 이주·철거 과정까지 마치도록 조합을 이끌었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분양조차 시작하지 못한 단지들도 많다. 신반포2차의 경우 2003년 9월 재건축 추진위 승인을 받았지만, 17년가까이 지난 지금도 추진위 단계에 머물러있다. 신반포3차·경남은 2003년 추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2015년 4월에서야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다. 이 단지는 올해 일반분양을 계획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조합원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결국 이를 모으는 건 조합장의 역할"이라며 "조합장의 리더십과 전문성, 재건축에 대한 의지 등이 사업 속도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3차를 재건축한 디에이치아너힐즈 전경. /현대건설 제공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3차를 재건축한 디에이치아너힐즈 전경. /현대건설 제공
◇확고한 목표와 소통 능력도 중요

강남구 ‘개포주공3단지’가 재탄생한 ‘디에이치아너힐즈’도 좋은 결과물을 낸 조합으로 꼽힌다. 이 아파트는 건설업계 ‘맏형’이지만, 강남 재건축에선 두각을 발휘하지 못했던 현대건설을 ‘재건축 강자’로 만든 단지이기도 하다. 강남 재건축에서 보폭을 넓히려던 현대건설과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고급 아파트를 짓고 싶었던 조합의 요구가 절묘하게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사업이 진행됐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수익성보다는 ‘작품’을 만드는 데 더 신경을 썼다"고까지 말한다.

이 관계자는 "단지 설계와 조경 콘셉트 상당수가 조합장의 아이디어였다"고 말했다. 조합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고급 주거환경을 선보이는 아파트로 만들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세웠고, 건설회사도 호응하니 결과물이 좋았다는 것.

디에이치아너힐즈는 양재천, 대모산과 인접한 자연환경을 살릴 수 있도록 타운하우스와 테라스하우스 등의 특화설계를 도입했다. 지상 공간을 ‘정원’으로 만들고 커뮤니티센터는 아예 ‘클럽 컬리넌’이라는 이름으로 지었다. 190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견된 3100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원석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아파트 외벽, 각 세대, 커뮤니티센터의 색감까지 하나하나 따졌다. 조합장이 시공사와의 치밀하게 협의하고 계약서를 꼼꼼하게 작성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물론 디에이치아너힐즈도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당시 현대건설과 조합은 ‘디에이치’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선보이며 당시로는 매우 공격적인 일반분양가(3.3㎡당 4457만원)를 제시했다. 하지만 고분양가가 확산할 것을 우려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보증을 거부했다. 결국 조합은 총회를 통해 3.3㎡당 4178만원으로 의결했지만, 조합장 재량으로 1%를 더 낮춘 4137만원을 최종 분양가로 책정했다. 분양가를 낮추는 것에 조합원 동의를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분양은 성공적이었다. 1순위 평균 청약경쟁률은 100.6대 1. 이를 발판삼아 현대건설은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강남구 대치쌍용2차 재건축 등을 수주하는 성과를 거뒀다. 현재 디에이치아너힐즈는 3.3㎡당 9000만원 이상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수도권에서 후분양을 시행한 과천주공1단지의 채양호 조합장도 치밀한 계산과 소통으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예로 꼽힌다. 과천주공1단지가 분양했던 지난해 7월은 HUG의 분양가 통제로 일반분양가를 제대로 받기 어려웠던 때다.

채씨는 치밀한 손익분석 시뮬레이션을 통해 후분양을 하는 것이 수익성이 좋다고 조합원을 설득했다. 결국 "불안하지만 가보자"는 방향으로 조합원들의 의견이 모였다. 과천에서 랜드마크 단지를 짓고 싶었던 대우건설 역시 적극적으로 이에 호응하며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시장 이해하는 전문가라야"

정비업계 관계자들은 "조합장은 반드시 재건축사업 전체 과정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시장 분위기를 제대로 읽는 전문가라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재건축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조합장들은 대부분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한형기씨는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에서 21년간 근무했고, 건설사업 관리회사 부사장까지 지냈다. 개포주공3단지 재건축 조합장인 장영수씨는 대우엔지니어링에서 33년간 근무했고 건국대 부동산학과 석사와 단국대 도시계획 부동산학 박사 과정을 밟은 건설·부동산 전문가다. 과천주공1단지를 후분양 하는데 성공한 채양호 조합장은 삼일회계법인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한 경력이 있다. 금융조달이 중요한 후분양에 최적화된 능력을 갖춘 셈이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도덕성도 필수다. 강남의 한 재건축사업장 관계자는 "조합장이 이권에 개입하면, 반드시 조합이 분열되고 그러다 사업은 어긋난다"면서 "재건축 컨설팅, 이주, 관리, 시공, 금융 등 워낙 다양한 이권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중립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무조건 탈이 나게 돼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