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노총 경쟁으로 바뀐 기업은행장 출근 저지 사태

송기영 기자
입력 2020.01.22 16:21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노동조합의 출근저지 시위로 취임 후 20일간 기업은행(024110)본점으로 출근을 하지 못한 가운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까지 시위에 가담하면서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기업은행 노조의 출근저지 시위가 양대 노총의 경쟁장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노총의 새 위원장에 당선된 김동명 전국화학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과 사무총장에 당선된 이동호 우정노조 사무총장은 22일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 로비를 찾아 기업은행 노조의 출근저지 시위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김동명 새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기업은행 노조의 낙하산 반대 투쟁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의 현안과 요구가 관철되는 승리의 순간까지 엄호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과 이 사무총장은 전날 한국노총 임원선거에서 당선된 뒤 첫 행보로 기업은행 시위 현장을 방문한 바 있다.

김동명 한국노총 신임 위원장이 22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로비를 찾아 기업은행 노동조합의 행장 출근저지 시위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기업은행 노조 제공
김동명 한국노총 신임 위원장이 22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로비를 찾아 기업은행 노동조합의 행장 출근저지 시위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하고 있다./기업은행 노조 제공
김 위원장은 한국노총 내부에서 상대적으로 ‘강성’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노동계에서는 앞으로 한국노총과 정부의 관계가 지금보다 긴장감이 높아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노총이 사상 처음 제1노조 자리를 민주노총에게 빼앗긴 상황이라 한국노총의 새 지도부는 강경투쟁 노선으로 선명성을 강화할 방침이다.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8년 노동조합 조직 현황’에서 한국노총은 조합원 93만3000명으로 처음으로 민주노총(96만8000명)에 뒤쳐졌다.

기업은행 내에서는 노조의 출근저지 시위가 거대 노총의 세력 각축장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민주노총도 윤 행장 출근저지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앞서 민주노총 산하 사무금융노조, 한국은행·금융감독원 노조도 기업은행 투쟁 현장을 찾아 연대 의사를 밝혔다. 윤 행장 출근 저지 시위가 양대 노총의 세력 다툼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윤 행장은 이날로 취임 20일째를 맞았으나, 아직 기업은행 본점으로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을 통틀어 2013년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14일)을 넘어서는 최장기 기록이다.

갈등의 중심에 선 윤 행장은 직접 여러 차례 노조에 대화를 제안했으나 노조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노조 내부에서도 갈등 장기화에 따른 경영 공백과 기업은행 이미지 실추, 고객 불편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고, 노조는 ‘윤 행장과의 대화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대화의 문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대통령이 찬물을 끼얹은 것과 다름없다"며 "이대로 투쟁을 접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됐고, 사실상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졌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갈등 장기화는 노사 양측에 모두 부담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위한 물밑 작업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사태 장기화에 부담을 느낀 정부와 여당 측도 기업은행 노조와 접촉을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양대 노총이 출근 저지 시위에 본격 가담할 경우 이런 물밑 접촉이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기업은행 직원은 "처음엔 노조의 시위를 지지했으나 출근 저지가 길어지면서 경영 공백을 우려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며 "노조가 대화에 소극적이고 상급단체의 참여로 시위 규모가 커지는 걸 보면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