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해체 시장붐, 한국은 脫원전에 경쟁력 상실

연선옥 기자
입력 2019.12.11 14:04 수정 2019.12.11 15:52
프랑스전력공사, 원전 해체 기술 확보 위해 합작법인 설립
"韓 탈원전 정책 수정 없이 원전 해체 시장 공략은 어불성설"

1960년~1980년대 건설된 원전의 설계수명 종료가 임박하면서 앞으로 전 세계 원전 해체 시장이 활기를 띨 전망이다. 초기에 원전을 도입해 노후 원전과 영구정지 원전 비율이 높은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원전 해체 산업이 성장하면서 관련 기업들이 기술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선두 업체로 꼽히는 프랑스전력공사(EDF)와 세계 1위 수처리 업체인 프랑스 베올리아는 10일(현지 시각) 원전 해체 기술 개발을 전담할 합작법인 '그라파이테크(Graphitech)'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EDF가 가진 원전 전문성과 엔지니어링 노하우, 베올리아의 로봇 기술을 결합해 원전 해체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협력할 계획이다.

원전 건설은 물론 운영·유지 보수 등 원전 서비스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EDF는 글로벌 원전 수주 시장에서 우리나라 한국수력원자력과 경쟁하는 기업이다. 우리 독자 기술로 건설 중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에 대한 운영·유지 보수 계약을 체결해 UAE 원전 시장에서 한국의 독점을 깬 곳도 바로 EDF다.

지난 2017년 40년의 운영을 마치고 영구정지에 들어간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한수원 제공
지난 2017년 40년의 운영을 마치고 영구정지에 들어간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한수원 제공
그런 EDF가 원전 해체 기술을 빠르게 확보하며 경쟁력을 강화하는 사이 우리나라는 탈(脫)원전 정책에 발목이 잡혀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올해 고리 1호기 시작으로, 원전 해체 산업을 육성하겠다며 관련 대책을 내놓았지만 탈원전 정책 기조는 버리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전 해체 기술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전 건설 과정에서 확보한 안전 기술이 해체의 핵심인데 정부가 탈원전의 도그마에 사로잡혀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원자력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현재까지 가동된 세계 원전은 619기(2018년 7월 기준)로, 이중 해체 중이거나 해체 예정인 원전은 145기다. 일찌감치 원전을 건설한 미국과 유럽 일부 국가들은 이미 본격적인 원전 해체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노후 원전의 해체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까지 200기 이상 원전이 퇴역하면서 원전 해체 시장 규모가 최대 2250억달러(약 270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거대한 시장을 잡기 위해 글로벌 기업의 각축전은 이미 시작됐다. 원전 건설에 경쟁력을 가진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이 기술개발 경쟁에 돌입했고, 우리나라와 중국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우리 정부는 지난 4월 원전 해체 산업을 육성하겠다면서 생태계 기반 조성, 인력, 금융 등 종합 지원 대책을 내놨다. 탈원전을 추진 중이지만 역량을 키워 원전 해체 시장에서 세계 5위 국가로 올라서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원전 해체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원전 기기 제작과 유지보수를 전문적으로 하는 대기업이 소규모 해체 전문기업을 흡수·통합해 합작법인을 설립하거나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EDF가 이번에 베올리아와 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고리원전 영구정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월성 1호기 폐쇄 등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가 원전 해체 시장을 잡겠다고 내놓은 목표가 무상해 보이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한 연구원 관계자는 "원전 해체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기술과 인력 수준은 아직 부족한 상태인데, 이 산업을 육성하는 방법은 원전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과거처럼 꾸준히 경험과 노하우를 쌓는 것이 정공법"이라며 "탈원전과 원전 해체 산업 육성은 결코 함께 갈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