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품이 사라졌다” 장수 브랜드만 남은 제과·라면

박용선 기자
입력 2019.12.11 06:00
20~30년 된 인기 제품에 의존, 신제품 찾기 힘들어
제과·라면 업체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 0.5~1% 불과

"대표 제품이 있어 매년 평타는 하고 있습니다만…"

국내 한 제과업체 관계자가 털어놓은 고민이다. 회사를 대표하는 제품이 꾸준히 판매되며 매년 일정 수준의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대표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쳐 새로운 성장을 이끌 신제품을 내놓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내 제과·라면 시장에 신제품이 보이지 않는다. 현재 시장을 이끄는 오리온 ‘초코파이’, 롯데제과 ‘꼬깔콘’, 해태제과 ‘맛동산’, 빙그레 ‘메로나’, 농심 ‘신라면’, 오뚜기 ‘진라면’ 등은 모두 1970~1990년대 처음 출시된 제품이다. 이 제품들은 출시 이후 꾸준히 인기를 끌며 회사 대표 제품으로 실적을 견인하고 있다.

서울 한 편의점 판매대에 진열된 과자와 라면. /박용선 기자
서울 한 편의점 판매대에 진열된 과자와 라면. /박용선 기자
하지만 이를 두고 기업들이 20~30년 된 인기 제품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20대 젊은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신제품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1974년 첫선을 보인 초코파이는 현재 오리온 전체 매출의 약 22%를 차지할 정도로 회사 내 비중이 높다. 빙그레는 우유, 아이스크림 두 개 사업을 하고 있는데 메로나가 아이스크림 부문 매출의 17%가량을 차지한다. 메로나는 1992년 처음 출시됐다. 이런 분위기는 농심, 해태제과 등 다른 제과·라면 업체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업체들의 연구개발(R&D) 소홀을 지적한다. 기존 인기 제품 개선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충성도가 높은 제품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이 투자 대비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제과·라면 업계에 "공격적인 R&D는 없다"는 말이 나도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제과업체 관계자는 "경기 침체, 인구 정체 등을 겪는 현 시장 상황에선 신제품을 무리하게 개발하는 것보다 기존 제품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며 "언제부터 공격적인 R&D를 하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국내 제과·라면 업체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율을 보면 1%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올해 3분기 기준 빙그레는 81억원을 R&D에 투자해 1.18%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농심은 1%(181억원 투자), 오리온은 0.72%(38억원), 롯데제과는 0.54%(85억원), 해태제과는 0.5%(27억원), 오뚜기는 0.37%(59억원)에 불과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국내 제과·라면 시장 규모와 소비자 특성상 기업이 적극적으로 R&D를 하고 신제품을 출시해도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며 "제조 원가를 낮추고 제조 과정에서 수율(불량 없는 양산 비율)을 높이는 전략이 시장에 자리 잡아 혁신 기업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