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내내 뒷걸음질 친 '경제활력'…끝없는 불황의 전조

조은임 기자
입력 2019.12.03 11:29 수정 2019.12.03 11:33
3분기 GDP디플레이터 -1.6%…외환위기 후 최저
수출가격 하락·내수부진…'디플레이션' 우려 증폭
"정부, 낙관론 거두고 발빠르게 정책 전환해야" 촉구

우리나라의 경제활력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1년 내내 추락하고 있다. 경제주체들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의 가격인 GDP디플레이터가 외환위기 후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물가가 반영된 명목 GDP 성장률이 실질 GDP 성장률을 밑도는 상황이 4분기 연속 지속되면서다. 반도체를 비롯한 주력 수출품목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내수에서도 수요측 물가압력이 위축된 결과다.

GDP디플레이터의 하락은 '디플레이션(Depression·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를 더욱 키울 수 있는 요인이다. 저성장·저물가가 글로벌 경제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지만 교역이 주된 먹거리인 우리나라에는 더욱 치명적이다.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투자·고용이 감소되고, 이는 가계의 소비여력을 더욱 옥죄게 된다. 정부의 세수에도 악영향을 미쳐 재정확대 기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경기낙관론을 거두고 정확한 현실 인식 아래 복지확대에 집중된 재정정책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포괄적 물가 'GDP디플레이터 -1.6%…수출가격 하락·내수부진 탓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GDP디플레이터(전년대비)는 -1.6%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분기(-2.7%)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GDP디플레이터는 명목 GDP 성장률과 실질 GDP 성장률의 격차로, 소비재는 물론 생산재, 자본재 물가까지 모두 포함해 우리 경제의 포괄적인 물가를 의미하는 지표다. 또한 기업과 개인,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생산하는 재화, 서비스의 부가가치의 가격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GDP디플레이터는 지난해 4분기 -0.1%로 마이너스(-)를 나타내기 시작한 이후 1분기 -0.5%, 2분기 -0.7%, 3분기 -1.6%로 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게다가 하락폭까지 점차 커졌다. 이를 한마디로 해석하면 우리나라 경제주체들이 생산하는 재화, 서비스의 부가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물가변동을 반영한 명목 GDP 성장률이 3분기 전년동기대비 0.4%로, 실질 GDP 성장률(2.0%)를 밑돌았는데, 이 역시 4분기 연속 지속되고 있다.

한은은 GDP디플레이터가 이처럼 추락하는 원인을 수출 가격 하락에서 찾았다. 3분기 수출 디플레이터는 -6.7%로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는데, 반도체, 디스플레이, 철강, 석유화학 등 주력 수출 품목의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진 영향이 컸다. 내수 디플레이터 역시 1.0%로 둔화 추세다. 한은은 수입가격 하락을 배경으로 설명했지만, 대체적으론 경기침체로 인해 수요측 물가가 둔화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을 보여주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 상승률은 11월 기준 1999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낮은 0.5%를 기록했다.

신승철 한은 국민계정부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전반적으로 저물가·저성장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GDP디플레이터의 하락세는 전례를 찾기가 어렵다"며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연말로 가며 상승하고 있고, 반도체 가격 하락폭도 주춤해 GDP디플레이터의 흐름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투자·고용 더 줄면 '디플레이션' 현실화…"낙관론 접고 현실대응 해야"

경제전문가들은 GDP디플레이터 하락세를 경기침체의 전조로 보고 있다. 외환위기 때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GDP디플레이터가 4분기 연속 하락하는 일은 없었는데, 특별한 악재도 없이 이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저성장·저물가의 정도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의미일 수 있어서다. 특히 수출을 중심으로 디플레이터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리나라 기업의 생산물이 세계시장에서 제 값을 못받는다는 것이어서 기업의 투자, 고용 의욕을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도 저물가 상황에서는 소비를 미뤄 민간소비의 성장세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수출 디플레이터가 하락하고 있다는 건 해외 소비자들에게는 긍정적인 반면, 생산자인 국내 기업에게는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라며 "전반적으로 수요를 이끄는 힘이 부족한 저성장 상황에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는데 세계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고 했다.

기업의 투자·고용 부진, 개인소비 위축 등 위험요소가 현실화될 경우 2%대 성장세도 장담할 수 없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2.0%, 내년 성장률 2.3%로 내다봤지만,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2.0% 성장하려면 남은 4분기 성장률이 0.93%는 기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한은도 정부지출이 예상만큼 크지 않을 경우에는 2%를 하회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또 한은의 성장률 전망치에는 정부의 재정지출 효과와 기업들의 투자 등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반영됐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경제가 부진할 경우에는 성장률이 가파르게 하락해 심리를 악화시킬 위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정부가 내년 상반기 반도체 반등 전망을 근거로 경기낙관론을 펴는 것을 상당히 우려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전망에는 재정지출의 승수효과와 삼성전자의 투자계획 등이 모두 반영된 건데, 이를 고려하면 현실적인 내년 성장률은 1%대라고 봐야 한다"며 "디플레이션이 이미 왔다고 보고, 현실에 기반해 복지중심의 재정정책을 전환하는 등 빠르게 변화할 채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