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SK 1兆 투자해 하루 4만배럴 친환경 선박 연료 생산

울산=연선옥 기자
입력 2019.12.02 06:00
‘IMO 2020’ 규제 대응해 대규모 VRDS 설비 건설

지난달 27일 SK그룹 주력 에너지·화학 계열사의 생산 설비가 모여있는 울산CLX(콤플렉스) 내 감압잔사유탈황설비(VRDS) 공사 현장. 우뚝 솟은 반응기(리액터·Reactor) 주변에 크레인 여러 대가 자재들을 실어나르고 작업자들은 마무리 배관 공사로 분주했다.

64m 높이의 이 반응기는 유황 함유가 높은 연료유, 이른바 감압 잔사유(VR)에 수소를 첨가해 탈황(脫黃) 반응을 일으켜 황을 제거하는 설비로, 친환경 저(低)유황 연료유를 생산하는 VRDS의 ‘심장’ 격이다.

SK에너지가 1조원을 투자해 건설한 VRDS가 내년 1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지난 2017년 SK가 VRDS 신설 계획을 발표하고 공사에 착수한 지 29개월 만이다. 두 달간 시운전을 거쳐 내년 3월 본격적인 상업 가동이 시작되면 하루 4만배럴(1배럴=159ℓ)의 저유황유를 생산하게 된다. SK에너지는 VRDS 가동으로 매년 2000억~3000억원 수익이 발생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에너지가 CLX 내 8만3800㎡(2만5000평) 부지에 대규모 설비를 세운 것은 내년부터 국제해사기구(IMO)의 ‘IMO 2020’ 환경 규제가 발효되면 저유황유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기 때문이다.

IMO는 선박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를 줄이기 위해 내년 1월 1일부터 선박 연료유에 포함된 황 함유량을 3.5% 이하에서 0.5% 이하로 규제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규제에 따라 세계 모든 선박은 배기가스 정화 장치인 '스크러버(Scrubber)'를 설치하거나 연료를 저유황유로 바꿔야 한다.

SK에너지가 울산CLX 내 8만3800㎡(2만5000평) 부지에 1조원을 투자해 건설 중인 VRDS 공사 현장./SK에너지 제공
SK에너지가 울산CLX 내 8만3800㎡(2만5000평) 부지에 1조원을 투자해 건설 중인 VRDS 공사 현장./SK에너지 제공
시장에서 수요 변화는 이미 감지되고 있다. 새로운 규제 시행을 앞두고 일부 선사들이 시범적으로 저유황유를 구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SK에너지에 따르면 지난달 SK에너지의 저유황유 판매실적은 전달의 4~5배 수준이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고유황유 수요가 올해 일평균 350만배럴에서 내년 140만배럴로 40%가량 감소하고, 같은 기간 저유황유 수요는 10만배럴 미만에서 100만배럴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덕환 SK에너지 최적운영실 PL은 "규제가 시행되면 유황 함량이 높은 연료를 실은 선박에 대해서는 출항 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에 IMO 2020은 상당히 강력한 규제"라며 "저유황유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스크러버를 설치한 선박의 경우 고유황유를 사용할 수 있지만, 스크러버 장착 속도는 빠르지 않다. 이 PL은 "스크러버 품질에 대한 의구심이 있고 장착에도 비용이 들어 많은 선사가 스크러버 장착을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SK에너지는 저유황유 사업이 최근 유가 변동성 확대와 글로벌 수요 감소로 수익성이 악화된 석유사업에 새로운 활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GS칼텍스나 S-OIL, 현대오일뱅크 등 다른 정유사들은 기존 탈황 설비 가동률을 높여 대응할 것으로 보여, 대규모 VRDS 설비를 갖춘 SK에너지가 저유황유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또 VRDS는 저유황유를 생산하는 것이 기본 역할이지만, 기존 고도화 설비인 중질유분해시설(RFCC)과 연계해 휘발유나 프로필렌 등 다른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노우호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VRDS 공정은 기술 장벽이 높은 만큼 고부가 설비로 판단된다"며 "SK이노베이션(096770)의 석유화학 자회사인 SK에너지는 VRDS 공정의 핵심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설비가 안정적으로 가동될 것"이라고 평가했다.